[TED 메인 콘퍼런스] “인류 위해 늘 새로운 일” 코디네이터 빌 게이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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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미국 롱비치 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린 TED 행사 도중 사회를 맡은 빌 게이츠(왼쪽)가 나이지리아의 유엔 밀레니엄개발목표(MDG) 담당 대통령 보좌관 아미나 아즈주바이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MDG 질병·빈곤 퇴치 등의 분야에서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드물게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TED 제임스 덩컨 데이비드슨 제공]


“나는 크리스나 준이 아닙니다. 나는 빌 게이츠입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일을 하려 합니다.”

 그를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TED 큐레이터)이나 준 코언(June Cohen·TED 프로듀서)으로 오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 누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를 모를까.

 하지만 사회를 보던 앤더슨·코언을 대신해 2일(현지시간) TED 콘퍼런스 무대에 오른 게이츠는 그렇게 멋쩍게 청중에게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큰 키 탓인지 허리도 구부정해 보였다. 옷차림도 평범했다. 양복 바지에 셔츠가 전부였다. 청바지에 부츠, 흰색 셔츠에 조끼로 멋을 낸 앤더슨에 비하면, ‘동네 아저씨’ 같은 차림이었다. 세계 두 번째, 미국 최고의 부자(2010년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 집계)는 그렇게 말솜씨도 모습도 소박했다.

 게이츠는 올해 세 번째 TED에 참석했다. 2009, 2010년에는 강연자였다. 각각 ‘모기, 말라리아와 교육’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에너지 기술 혁신’이 주제였다.

특히 지난해에는 “원전의 우라늄 폐기물을 활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테라파워(terrapower) 기술을 후원하고 있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날은 게스트 큐레이터로 사회만 봤다. 프로그램상에는 강연도 하는 걸로 나와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강연자들을 소개하는 데만 주력했다. 소개된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 나이지리아 공무원 아미나 아즈주바이어 , 병리학자 브루스 에일워드 , 교육자인 새먼 칸 . 이들은 각각 과학·역사를 아우르는 통합 역사교육, 나이지리아의 보건·복지 환경 개선 분야에서 거둔 성공, 소아마비 퇴치를 위한 싸움, 온라인을 이용한 혁신적인 교육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얼핏 보기에 모두 무관해 보이는 강연들이었지만 게이츠가 이들을 소개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게이츠는 전날(1일) 자신의 홈페이지(www.thegatesnotes.com/TED)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하는 일의 좋은 점 하나는 세계에 긍정적 변화를 일구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놀라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고무시키는 그런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은 특권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들과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올해 다시 TED 강연을 맡는 것 외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가 기뻐했던 이유 중 하나다.”

 결국 2일 게이츠가 TED 무대에서 세계에 소개한 강연자들은 모두 그가 직접 고른 사람들이었다. 그는 아즈주바이어와 칸에 대해 각각 “나이지리아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고무적인 사람” “교육 분야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혁신가 중 하나”라는 평도 남겼다.

 게이츠는 MS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뒤 이전의 ‘위대한 창조자’ 역할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빈곤과 질병 퇴치, 교육 개혁이라는 인류의 숙제를 풀기 위한 ‘코디네이터’로 변신 중이다. 그와 아내 멀린다가 설립한 게이츠&멀린다 재단은 지난달 28일에도 개발도상국 식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7000만 달러(약 79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이 분야에 기부한 돈은 20억 달러가 넘는다. TED에서도 이제 직접 나서기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사람들을 뒤에서 조용히 돕는 길을 선택한 듯하다. 관객들은 이날 사회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가는 게이츠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롱비치(미국)=김한별 기자

◆TED=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로 첨단 기술과 지적 유희, 예술과 디자인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행사다. 다보스 포럼이 ‘거대담론’을 논하는 자리라면 TED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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