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역경 딛고 서울대 간 김재송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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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대에 입학한 김재송군은 “합격의 기쁨 보다 앞으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크다. 그동안 큰 도움주신 선생님과 이웃을 위해서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며 밝게 웃었다. [조영회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대 입학을 앞두고 있는 김재송(19)군을 온양고 교정에서 만났다. 학원에 의존하지 않고도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을 소개받아 취재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재송군은 “학원 다니는 아이들 보면 부러웠어요.”라고 말했다. 자기주도 학습을 하느라 일부러 학원을 안 다닌 것이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을 다닐 수 없었다는 얘기다. 순간 ‘아차’했다. 가난, 그리고 엄마를 잃은 슬픔 등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딛고 서울대 인문계열에 당당히 입학한 김군의 사연을 들어봤다.

글=장찬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학원 다니는 아이들 보면서 ‘나도 학원 다니면 이렇게 어렵게 공부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학원에 다닐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학교수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재송군은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났지만 어릴적 아버지 직장을 따라 아산으로 이사와 살았다. 그러나 얼마 안가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이 부도로 문을 닫았다. 김군의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다녀 보았지만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 졌다. 재송군이 태어날 때부터 지병이 있던 어머니는 갈수록 병세가 나빠졌다.

 그래서 재송군은 학원 한 번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학원 다니는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은 빼놓지 않고 책과 노트에 옮겨 적었다.

“1등 했다고 성적표를 보여 드리면 가장 좋아하시던 엄마가 고1때 돌아 가셨어요.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공부는 해서 뭐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끝까지 저를 믿어 주신 선생님 덕분에 다시 일어 설 수 있었어요.”

 재송군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 오셨다. 재송이가 고교에 입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서둘러 병원으로 옮겼지만 어머니는 끝내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공부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도 불편하기만 했다. 무기력에 빠진 재송군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은 온양고 선신영 교사(수학)다.

 중학교 때부터 재송군의 사정을 알고 눈 여겨 보고 있던 선 교사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재송군의 아버지를 만나 “재송이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3년 내내 재송군의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 교사는 엄마 잃은 슬픔에 빠져있는 재송에게 오히려 회초리를 들었다. 그리고 “너만의 꿈을 그리라”고 요구했다. 스스로 다시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아줘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번역가란 직업에 대해 소개한 책을 읽었어요. 세계 여러 나라에 훌륭한 사람들이 쓴 책을 번역해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도와주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재송군은 다시 학교 수업에 열중했다. 선생님의 말대로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한때 공부를 등한시했기 때문에 갈 길이 바빴다. 그러나 체력이 문제였다. 밤 10~11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만큼 지쳤다. 하루 평균 7시간씩 잤지만 수업 시간도 힘에 겨워 쉬는 시간에도 토막 잠을 청해야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 불편한 몸이지만 자식을 위해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에 나가고 있는 누나, 끝까지 믿고 지켜봐 주시는 선생님을 위해서. 그리고 나만의 꿈을 위해.

 재송군은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고2때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라는 책을 읽으면서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재송군은 세상에 나와 있는 좋은 책들을 번역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멋진 번역가가 될 작정이다.

“서울대에 입학했으니 앞으로 더 잘해야지요. 그동안 믿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잖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고마움에 꼭 보답하고 싶어요.”

 2일 서울대(인문계열) 입학식 날이다. 늦은 밤 재송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송군의 목소리는 밝았다. “입학식 끝내고 기숙사에 들어오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재송군은 수시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 보다는 “졸업은 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고 한다.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입학금과 1학기 등록금은 해결했지만 앞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재송군은 “앞으로 학비만큼은 아버지나 누나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 졸업은 할 수 있겠죠?”하며 크게 웃었다.

 선신영 교사는 “재송이는 역경과 시련을 딛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 믿는다. 미래가 밝은 젊은 인재에게 지역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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