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잃고 우울증 … 고리나를 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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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은 남편을 잃은 고릴라 고리나가 적적해 하지 않도록 놀이감인 신문을 넣어 준다. 고리나는 신문을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김형수 기자]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타박하더니, 떠나고 나니까 쓸쓸한가 봐요. 털도 푸석푸석해지고, 벽을 마구 두드리고요.”

 서울동물원 박현탁 사육사는 요즘 고리나(33·암컷)가 안쓰럽다. 지난달 17일 남편 고리롱(49세 추정)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서다.

 “남편이 떠난 후 며칠 동안 방사장 지붕 위에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서울동물원의 ‘인기스타’였던 고리롱이 떠나면서 고리나는 국내 유일의 ‘로랜드고릴라’가 됐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 따라 1급으로 분류된 멸종위기종이다. 새로 수입하는 것은 고사하고 번식을 위해 빌려오는 것조차 어렵다. 10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몸값이 높은 이유다. 어렵사리 수컷을 들여온다 해도 고리나가 건강해야 새끼를 낳을 수 있다. 고릴라의 평균 수명은 40~50세. 33살인 고리나는 사람으로 치면 환갑쯤 된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앞으로 4~5년은 임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고리나는 요즘 동물원에서 ‘가장 귀한 분’이 됐다. 박 사육사도 고리나 특별 관리에 나섰다. 먼저 방부터 옮겨줬다. 옆방인 침팬지 방사장에서 공사를 시작해 혹시라도 소음 스트레스를 받을까 우려한 것이다. 특별식도 먹는다. 아픈 고리롱에게 주던 닭백숙이다. ‘1차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도 시작됐다. 답답하지 않도록 놀잇감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잡지나 신문을 넣어주고, 먹이를 줄 때도 겹겹으로 포장을 하거나 흙 속에 숨겨놔 호기심을 유발한다. 박 사육사는 "관람객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상반기 중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이 방사장 앞에 설치된 자전거를 타면 여기에 연결된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고릴라에게 먹이를 주는 방식이다.

고리나는 2002년 고리롱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아 새끼를 갖지 못했다. 서울동물원은 고리롱의 사체에서 정자를 확보해 인공수정을 추진 중이다. 이달 중순께 인공수정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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