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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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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철호
논설위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두 장관이 있다. 아무리 해도 죽지 않는 불가사리를 닮았다. 바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다. 그제 야당은 전세대란을 문제 삼아 정 국토부 장관을 혼냈다. 그는 평소 “전세만 14번이나 옮겨 다녀 누구보다 집 없는 설움을 잘 안다”고 자랑했다. 그러더니 서울 남산 자락의 아파트를 5억원에 전세준 게 도마에 올랐다. 야당은 “인사 청문회 때 왜 투기가 아니라 실거주용이라 거짓말했느냐”고 따졌다. 그는 “과천 청사에 출근하는 데 산본 집이 더 가깝다”고 해명했다.

 정 장관이 전세난에 헛다리를 짚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해 말까지 “전·월세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고 장담했다. 올 들어 두 차례 전세 대책을 내놓으며 “정말 다 내놓았다. 내 책상 서랍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전세 대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전형적인 정책 판단 미스다. 그렇게 미운털 박힌들 야당이 그의 낙마(落馬)를 노렸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잘못 짚었다. 그의 뒤에는 4대 강 사업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주변에선 “정 장관이 수십 채를 전세 놓았어도 끄떡없을 것”이라 수군거린다.

 환경부 이 장관의 ‘숨겨진 딸’ 역시 해묵은 사안이다. 친딸이냐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는 1심 재판에 세 차례나 유전자 감정을 거부하다 패소했다. 2심 때도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유전자 검사 하루 전에 일본의 생물다양성 총회에 출장을 가버렸다. 생물다양성을 너무 사랑하는지, 아니면 유전자 검사를 너무 싫어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는 “공직에 있는 한 유전자 검사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겠다”는 입장인 모양이다.

 그를 비겁하다 욕하지 말라. 구제역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도 성급하게 따질 사안이 아니다. 그 역시 4대 강의 총대를 멨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불과 6개월 만에 환경영향평가를 마무리하는 기록을 세웠다. 4대 강은 최소한 4계절에 걸쳐 깐깐히 환경영향을 짚어야 할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었다. 이런 ‘효율적 환경행정’의 밑에는 “환경부를 환경부라 부르지 못하고…”라는 자탄(自嘆)이 깔려 있다. 환경부 직원들은 “우린 국토부 2중대”라며 한숨 쉰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비공개로 정·이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공사 속도를 높이라”고 특별 지시했다.

 두 장관은 이미 3년을 넘긴 최장수 각료들이다. 청와대 인사들은 두 사람의 거취 이야기가 나오면 “인사 청문회가 겁난다”며 손사래 친다. 두 사람을 바꾸는 순간, 인사 청문회에서 4대 강이 다시 정치문제화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묻어난다. 이 대통령은 연초 좌담회에서 “효율과 추진력, 나는 일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한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웬만해선 두 장관을 막을 수 없다.

 4대 강 사업과 전세·구제역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잘 모른다. 다만 시급성을 따지면 전세·구제역이 아닐까. 4대 강을 좀 늦추더라도 서민과 축산농민의 눈물부터 닦아주는 게 상식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4대 강 현장을 다녀올 때도 순차적 진행이 옳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4대 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예정보다 석 달 앞당겨 추석 전에 끝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4대 강이 끝나도록 빌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제대로 된 전세대책이나 깔끔한 구제역 매몰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서민들은 정 장관의 처방대로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할 판이다. 돈을 더 빌려 전셋집을 찾거나, 아파트 거래가 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 장관의 친딸 문제도 잊어야 한다. 효율성이 중요하지 공직자의 도덕성은 따질 시대가 아니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성싶다. 야당 역시 표적을 제대로 맞혀야 한다. 손자병법(孫子兵法)도 상대의 약한 곳을 건드리는 게 기본이다. 4대 강이 버티는 한 두 장관은 너무 강한 고리다. 앞으로 대정부질문할 때 참고하시도록.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