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독립' 방송委에 달려있다

중앙일보

입력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란 측면에선 현재보다 크게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통합방송법이 국회 문광위를 통과하자 방송노조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제도적으론 방송 독립이 현격하게 신장됐지만 이를 꾸려가는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권력에 종속돼온 방송이 그다지 달라질게 없다는 지적이다.

사실 여야가 막판까지 합의하지 못하고 여당의 단독처리로 통합방송법이 통과된 데에도 정치적 요인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위성방송.케이블방송 정상화 등 방송의 산업적 측면엔 별다른 이견이 없었으나 방송정책을 수립.집행할 방송위원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신경전은 막판까지 치열했다.

결국 대통령.국회의장.국회 문광위가 각각 3명씩 뽑는 여당안이 통과돼 방송위원 9명 가운데 7명을 사실상 여당이 차지하게 됐다. 또한 상임위원 4명을 여권이 장악하게 돼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란 통합방송법의 입법 취지가 빛바랜 것은 아니냐는 인상을 주고 있다.

반면 우리와 외국의 방송규제기구를 비교해보면 방송위 구성에선 별다른 차이가 없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국가 기본정책 가운데 하나인 방송정책 수립은 대부분 집권여당의 책임 아래 놓여있다.
특히 지금까지 다른 어떤 언론매체보다 권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방송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의구심을 선뜻 버릴 수 없게 된다.

이같은 우려에도 통합방송법은 현행보다 방송독립 측면에서 분명 한 단계 진전했다. 예전의 공보처와 현재 문화관광부가 갖고 있던 방송정책 수립.집행권이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송위원회로 넘어왔다.
게다가 신설될 방송위는 심의기준을 어긴 프로그램 제작자를 처벌하는 준사법권 등 막강한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지난 30일 통합방송법이 통과되자 민주방송법쟁취 국민운동본부.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방송위원회 노조 등이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거대 공보처 부활 우려' '반쪽짜리 통합방송법' 이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방송위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초 방송위가 문화관광부와 '협의' 하도록 규정된 방송영상정책권이 '합의' 하도록 수정됐고, 방송위 규칙으로 만들 방송위 사무처가 대통령 시행령으로 짜여 방송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다만 여당은 대통령 시행령이라 하더라도 실제론 방송위원장이 국무총리에 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고 밝혀 시민단체들의 불편한 심기를 다소 가라앉혔다.
이래저래 막강 방송위를 끌어나갈 방송위원의 전문성.객관성 확보, 정치적 중립이 최대 관심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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