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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MB 초심은 전세대책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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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누가 뭐라 해도 전세·물가·가계 빚이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란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친(親)서민 정책’과 ‘중도·실용 노선’의 운명이 걸린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초저(超低)금리와 고(高)환율 정책을 유지해온 탓에 누적된 문제들인 만큼 단칼에 풀기 어렵다. 냉·온탕을 반복하는 단기 미봉책으론 안 된다. 전반적인 정책 노선까지 재검토해야 할 사안들이다. 특히 전세 문제는 주택시장의 특성상 2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만큼 호흡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전세대란에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집값이 오를 것 같지 않으니 전세를 살면서 보금자리주택 등 양질의 분양주택을 기다리는 수요가 적지 않다. 여기에 재건축·뉴타운 등으로 멸실(滅失)주택이 늘어 신규 전세 수요가 증가한 반면 주택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차질을 빚고 있다. 저금리로 집주인들이 전세 대신 월세로 돌리는 구조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2년 전부터 오피스텔 바닥 난방 면적을 늘리는 등 땜질식 처방을 반복해 왔다. 올 들어 두 차례나 전세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고 민간 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는 단기 대책들만 짜깁기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소유 중심에서 거주 중심으로 주택정책을 바꾸겠다”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이 정부가 반값 아파트라는 보금자리주택에 치중한 나머지 임대주택 정책은 실종된 느낌이다. 지금부터라도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장기·소형 임대주택은 정부와 공공부문이 책임진다는 방침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주택공급이 늘지 않는 한 전·월세 시장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집값 폭락 우려로 연기시킨 신도시와 도심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1~3인 가구가 급증하는 사회구조 변화에 맞춰 보금자리주택을 중소형 공공 임대주택으로 과감하게 전환시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막연하게 “공급 확대”만 외치며 꾸물거릴 때가 아니다. 2~3년을 내다보며 구체적인 비전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시장에 신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다행히 지난주를 고비로 수도권의 전세대란이 다소 진정되는 양상이다. 지금이야말로 근본대책을 검토해야 할 타이밍이다. 전·월세 불안도 따지고 보면 정부가 그동안 집값 안정에 치중하면서 민간부문의 주택 공급이 줄었고, 그 여파로 전세 시장의 수급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정부가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전·월세 문제는 충분히 풀 수 있는 사안이다. 국토해양부부터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세자금을 더 빌려주겠다, 주택을 많이 사야 전세난이 해결된다는 식의 안이한 미봉책들은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을 뿐이다. 전·월세 가격이 치솟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최하위층 서민들이다. 친서민 정책은 치밀하고 근본적인 전·월세 대책을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