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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학 기숙사 들어가려 ‘위장전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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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 서울대생이 교내 기숙사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주하려다 적발됐다. 지원서 주소란에 지방으로 허위 기재했다가 들통 난 것이다. 바로 ‘위장전입’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기숙사비가 월 15만원으로 싸고, 학교 오가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입주가 정작 실수요자인 지방 출신 학우(學友)의 기회를 가로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걸까. 서울대에서 1월에만 세 명이 적발돼 입주 허가가 취소됐다고 한다.

 우리는 청문회 때마다 “자연을 사랑해 땅을 좀 샀을 뿐”이라거나 “자녀에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실천하려 주소지만 옮겼다”는, 위장전입한 일부 지도층의 변명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사회적 정의를 배워야 할 대학생 자녀에게까지 이런 편법과 도덕불감증을 물려주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더욱이 이번에 적발된 대학생은 서울 강남에서도 부자 동네로 알려진 소위 ‘청담족(族)’이란다. 이래서야 장차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리더로 성장하길 기대할 수 있겠나.

 근본적인 문제는 외형적 성장에 치중해 온 대학의 태도다. 기숙사 입주를 희망하는 학생에 비해 기숙사가 턱없이 부족한데도 대학은 시설을 확충하는 데 미온적이다. 문제가 된 서울대는 기숙사 수용률이 33%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서강대 14%, 연세대(서울) 13.2%, 이화여대 8.5%, 고려대(안암) 5% 선에 불과하다. 그러니 “기숙사 뚫기가 입시보다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미국·영국은 물론 중국도 대학에 기숙사는 기본이다. 교육시설의 일부인 것이다. 일본의 대학은 부족하면 인증한 민간시설을 알선해 준다. 전국에서, 해외에서 오는 학생들의 면학 편의를 위해서다. 반면 우리 대학생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싼 방과 하숙집을 찾아 철새처럼 헤맨다. 올해처럼 전세난에 물가고까지 겹치면 부모는 휜 허리가 더 꺾이고, 학생은 ‘하숙 난민’ 신세가 된다. 대학과 정부는 학생을 뽑는 데만 신경 쓸 게 아니라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 기숙사를 선택적 학생복지 차원을 넘어 필수 교육시설로 여기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