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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인플레 공포, 이상기후 → 곡물가 인상 → 중동시위 → 유가급등 '악순환'

미주중앙

입력

이집트 카이로의 타히르리 광장에서 리비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이 한데 섞여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LA한인타운 윌셔가에 위치한 사무실을 나와 웨스트LA에 있는 집으로 향하던 한인 Y모씨는 주유소에서 자신의 혼다 어코드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년간 월급 인상은 커녕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만 졸이며 살았다는 그는 “개솔린 가격이 4달러에 가깝지 않냐”며 “불경기인데 곳곳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으니 앞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모 한인마켓에 장을 보러 나온 주부 O모씨 역시 장소만 다르지 하는 말은 Y씨와 차이가 없다. O씨는 “100달러로 장을 보면 카트에 채워지는 물건의 양이 다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식품쪽에선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면 내용물의 양이 줄어들었다. 눈가리고 아웅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서서히 실생활로 다가오고 있다. 밀 콩 커피 옥수수 등의 가격이 기후변화에 따른 공급 부족과 경기회복으로 인한 수요 증가로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북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의 민주화 바람에 유가까지 배럴당 100달러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시작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민주화 바람? 인플레 바람!

민주화 바람으로 인식되는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 사태의 중심에는 인플레가 자리한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경제적 이슈가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 것이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이집트는 세계에서 밀 수입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밀을 직접 경작하기에는 기후나 환경이 적합치 않다. 지난 1년새 밀값이 70%나 올랐으니 불만이 폭발할 만도 하다.

리비아 같은 중동 지역 국가들은 경제가 석유산업 하나로 이뤄지다시피 해 고용이 크지 않다. 물가가 오르면 국가가 보조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소득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곡물값이 폭등하자 경제구조가 무너진 것이 시위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이 금리를 인상하고 서민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나서는 건 물가 인상에 따른 불만이 정치적 위협으로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얼마나 올랐길래

오른 건 밀값 만이 아니다. 개솔린 가격만 봐도 물가 상승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지난 해 9월27일에 갤론당 2.996달러였던 캘리포니아 지역 평균 개솔린 가격은 지난 21일 3.555달러로 5개월만에 18.66% 올랐다.

옥수수 가격은 지난해 말부터 지난 11일까지 2개월여만에 32.2% 올랐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남부 지역 가뭄의 영향 때문이다. 콩 가격도 1년새 55% 이상 올랐다. 구리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도 전년대비 두자릿수의 인상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물가 상승 압력 문제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에 비해 중국 인도 등 급성장하는 신흥 국가들에서 더 심각하다. 싱가포르의 지난 1월 소비자가격지수(CPI)는 전년대비 5.5% 상승했으며 베트남의 2월 CPI는 무려 12.31%나 올랐다. 인도에서는 최근 수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식료품 가격 상승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는 시위가 일기도 했다.

▶문제의 시작은 경기부양책

이같은 사태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경기부양책이 발단이 됐다. 미국의 경우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던 2009년 3월 1조7000억달러 규모로의 1차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금리가 제로(0) 수준으로 낮춰지고 유동성도 풍부해졌지만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자 Fed는 지난 해 11월 6000억달러 규모의 2차 양적완화 실시를 발표했다.

통화가 증가하면 인플레가 필연적이지만 늘어난 유동성이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이 아닌 중국 인도 등지의 신흥 시장 원자재 시장 등에 투자됐다. 여기에 때마침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발생하며 곡물가격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이는 중동 지역의 불안을 야기해 이제는 유가발 인플레이션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도 인플레가 눈앞에

최근에는 식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다른 업종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온다. 아시아나 남미 등 이머징 마켓에서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자 미국 기업들의 생산 원가도 동반 상승했다. 이때문에 연초부터 기업들의 가격 인상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해외로 빠져나갔던 자금이 올해는 미국 등 선진국으로 다시 몰릴 것이라는 분석도 인플레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반면 연방준비은행(Fed)의 수장인 벤 버냉키 의장은 최근 인플레 우려가 크지 않다는 자신감을 내비췄다. 최근 발표된 지난 1월 CPI를 보면 재화 가격은 1년 전보다 2.2%나 올랐지만 서비스 가격은 1.2% 오르는 데 그쳐 인플레 부담을 완화시켜준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유가 동향은 그나마 억눌려있던 인플레 압박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이같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선 금리 인상이 유력한 해결책이지만 이는 미약하게나마 회복중인 경기에 치명적이다.

세계 경제가 인플레와 경기회복의 갈림길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 주목된다.

염승은 기자 rayeo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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