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한 명 못 당하는 주류 경제학자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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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호 30면

지난주 대학과 연구소에 있는 경제학자 몇 분과 저녁 모임을 가졌다. 시장을 신뢰하고, 개방과 규제 완화를 소신으로 여기는 이른바 주류 경제학자들이었다. 자연스레 대화가 얼마 전 중앙SUNDAY 에 실린 ‘장하준 논쟁’(2월 13~14일자)으로 옮겨졌다.

고현곤 칼럼

참석자들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내용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좌·우파가 모두 탐탁지 않게 여기는데도, 대중은 환호해 무려 40만 권이 팔린 그 책 말이다.

『…23가지』에 대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지적(자세한 내용 sunday.joins.com 참조)보다 필자가 정작 궁금한 건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이 『…23가지』를 못마땅해하면서도 왜 그동안 문제를 삼지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좌파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11월 『…23가지』 발간 이후 장 교수를 치열하게 공격했다. ‘박정희 시대를 동경하는 수구이자 친재벌’이라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 불만이 있었으나 대응이 한발 늦었다. 총대를 멘 학자도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실장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참석자들에게 왜 진작 반박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열기를 더하던 참석자들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얼굴 내미는 학자들 문제 있어” “바빠서…”. 하지만 ‘이 사람은 또 뭐야’라며 애써 무시해온 장 교수의 책이 40만 권이나 팔린 사실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류 경제학은 위기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위기다. 복잡한 수학 방정식으로 계량화하거나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덧씌운 경제 모델에 몰입해 있다. 그 모델은 정확한 것도 아니어서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내놓는 경제 전망은 민망할 정도로 빗나가기 일쑤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난해한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경제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봐도 국내 주류 경제학자들의 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외국 경제학자들의 번역서가 대중의 관심을 얻는 정도다. 적어도 서점에선 ‘어떻게 하면 출세하고, 돈 버느냐’ 류의 처세술·재테크 책이 ‘주류’다. 그 틈바구니에서 좌파 경제학자들의 치열한 사회비판 책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이런 대중 경제서에 대해 주류 경제학자들은 학문적 가치가 없다고 평가할 것이다. 사안을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단순화해 학자의 양심에 맞지 않는다고도 말할 것이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대중은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주류 경제학자들이 대중과 만나는 접점이 신문과 잡지 기고다. 하지만 ‘규제 완화’ ‘작은 정부 큰 시장’ ‘분배보다 성장’ ‘공기업 개혁’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 제목만 봐도 ‘아, 또 그 얘기…’ 하는 것이 많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자주 반복하니 감동이 별로 없다. 대중은 갈증을 느낀다. 이 틈을 장 교수가 설득력 있고 알기 쉬운 논리로 파고든 것이다. 장 교수의 그 논리가 맞는지, 틀린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이다. 사회에 나타나는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거기서 규칙을 밝혀내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 책무도 있다. 그게 안 되면 죽은 학문이다. 좌파나 장 교수에 비해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중 스킨십이 부족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알기 쉽게 풀어 설파하고,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치열함이 모자랐다. 장 교수의 주장처럼, 그들이 틀을 미리 정해놓고, 여기에 맞지 않으면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건 아닐까.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경고해 주가를 올렸다. 자신들의 틀에만 의존했으면 그러기 어려웠을 게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다듬었기에 그런 경고를 할 수 있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항변할지 모른다. 아무리 설명해도 대중이 시장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래서 왜곡과 선동에 쉽게 현혹된다고. 하지만 대중이 무지하다면 주류 경제학자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고, 대중을 이해시키는 것 역시 그들의 소임일 것이다. 적어도 ‘주류’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 현장에 발을 디디고, 대중과 소통하지 않으면 주류 경제학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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