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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창살 없는 유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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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창살, 그중에서도 쇠창살은 갇힘의 기호(記號), 단절의 상징이다. 현실에서 쇠창살로 이뤄진 공간은 감옥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쇠창살엔 억압의 의미와 자유에 대한 동경이 함께 담겨 있다. 이를 제대로 형상화한 게 보드카 앱솔루트 ‘감옥’편 광고다. 쇠창살 한가운데가 술병 모양으로 굽어 있고, 그 아래에 ‘절대적 자유(ABSOLUT FREEDOM)’라는 카피가 한 줄 있다. 쇠창살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에 빗대어 제품에 눈이 가도록 한 기막힌 발상이다.

 쇠창살은 생명을 일깨우는 역설이기도 하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간 박재순 목사의 체험도 그렇다. 긴급조치 시대여서 감옥생활은 가혹했다. 면회도 안 되고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오로지 세 끼 밥만 기다리던 처지였다. 그때 쇠창살 밖으로 짹짹거리며 날아가는 참새를 보거나 풀잎과 나뭇잎을 보며 가슴 밑바닥에서 기쁨이 차올랐다고 한다. ‘생명은 기쁜 것’이라고 깨달았다는 거다.

 시인 김지하의 생명사상을 낳은 것도 어찌 보면 쇠창살이다. 유신독재에 맞서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는 쇠창살 사이로 들어온 새하얀 민들레 꽃씨들이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며 춤추는 걸 본다. 쇠창살 바닥 틈에 개가죽나무 씨앗이 날아와 싹을 틔우는 것도 본다. 생명은 무소부재(無所不在)요, 쇠창살도 생명 앞에는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는 깨달음이 거기서 나온다. 그가 출옥 후 펼친 생명운동의 출발점이다.

 물론 필부필부(匹夫匹婦)가 쉽게 접근할 경지는 아닐 터다. ‘창살 없는 감옥’조차도 힘겨워하는 게 일상(日常)이 아니던가. ‘삼천만의 연인’으로 불리며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가수 박재란이 부른 노래 ‘님’의 부제가 ‘창살 없는 감옥’이다.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40여 년 뒤 댄스 가수 박진영도 ‘창살 없는 감옥’을 부른다. ‘날 놓아줘 풀어줘 창살 없는 감옥에 날 가두고 누구에게도 가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지 말고’. 누군 만날 수 없어서, 누군 붙들려 있어서 창살 없는 감옥이란다.

 경찰서 유치장의 쇠창살이 없어질 모양이다. 창살을 투명 플라스틱판으로 바꾸고, 내부 벽면엔 초록색과 분홍색 꽃무늬 등도 그려넣을 거란 소식이다. 수감자들이 공포심을 덜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라는데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창살 없는 유치장’이 경찰의 인권의식 개선의 상징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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