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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덜트 베이비 VS 키드 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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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장편소설감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기를 보면 누구나 천사가 따로 없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기보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올곳이 성인 한사람의 일이다. 그것도 아기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면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 맞추어 젖(혹은 분유)주어야 하지, 기저기까지 더구나, 매일 해야하는 목욕은 어떻고, 피곤한데 왜 자지않는지 또 자다가 왜 그다지도 많이 우는지.
그러나, 그렇게 우는 모습에 짜증내다가도 아기의 환한 웃음을 보면 모든 피로가 다 풀리면서 완전 무장해제 되어버린다. 아기를 키워 본 사람 누구나 아기키우기는 장편소설감이라는 생각이 들 거다. 물론 만화가는 좋은 만화소재라고 생각하겠지만.

아기를 소재로한 한국과 일본의 두 만화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한 만화가들이 있나보다. 한 사람은 〈키드 갱〉의 신영우씨, 또한 사람은 〈어덜트 베이비〉의 시나추 도마사와씨다.
두 만화는 모두 코믹물로 육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만화가 신영우는 모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신혼에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것을 보고 소재를 얻었다"고 했다. 아마도 일본 작가 토미사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너무도 새심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키드갱〉의 진수는 각 에피소드가 끝나면 보너스로 나오는 '대봉이의 육아일기'다. 아기머리는 생후 1개월이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얼굴형태가 형편없어진다는 '비뚤어진 머리'편이나, '아기 목욕시키기'등 비록 코믹물로 비틀기는 했지만 실제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장면들이다. 〈어덜트 베이비〉 역시 아기들의 생활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육아라는 같은 소재를 택하고 있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천양지차다.

순진한 건달들의 육아일기 〈키드 갱〉

도무지 조직 폭력배같지 않은 자칭 건달 '피의 화요일'파는 어느 날 조직원 2명의 구속을 복수하기 위해 수사를 담당한 한형사의 갓 난 아기를 유괴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어 아기를 데리고 나오자마자 가스폭발로 한형사의 가족들이 모두 죽어버리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기의 보호자가 된 강대봉이하 '피의 화요일'파. 강대봉 자신의 어렸을 때의 과거 때문에 차마 고아원에는 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아기의 친척을 찾을 때까지만 아기를 임시로 키우기로 결정한다. 이때부터 깡패들과 아기의 어울리지않는 동거가 시작된다.

갓난 아기가 되어버린 야쿠자 〈어덜트 베이비〉

목욕탕에 간 중간보스쯤 되는 야쿠자가 뇌진탕으로 죽어버린다. 마침 같이 목욕탕에 왔던 신혼의 임산부 뱃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기로 환생하게 된다. 몸은 갓태어난 아기. 생각은 정신없는 야쿠자. 속으로는 엉큼한 생각을 하지만 얼굴은 천사같은 아기. 점점 몸에 따라 마음도 바뀌어간다. 예전에 좋아하던 술집아가씨보다 같은 또래의 아기 사라를 좋아하게되고, 장난감병정을 한 줄로 세우면서 좋아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와서는 '이게 성장인가봐'하고 외치는 1살짜리 아기. 바로 이런 부조화가 만화를 끝까지 황당과 폭소로 이끈다.

소재는 같지만 상이한 전개방식

두 작품은 모두 육아를 주제로 하지만 방식은 전혀 다들다. 가장 중요한 점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다. 먼저 '키드갱'은 말그대로 육아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런데, 아기를 기르는 사람이 범상치 않다. 바로 건달들(주인공 강대봉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전통건달이라고 우긴다)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처음보는 건달들이 아기를 키우면서 아기에게 점점 동화되어간다.

만화의 화자는 소설에서 말하는 3인칭 전지적 시점이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생각도 들여다보고 그들의 행동도 멀찍이서 바라본다. 이런 화법을 구사하다보니 '키드갱'은 육아 자체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에 의존하게된다. 그래서, 엄밀히 보면 〈키드갱〉은 육아만화라기보다는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각각의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캐릭터만화이다.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그렇다. 어두운 과거 때문에 한때는 모래시계 최민수를 능가하던 보스에서 이제는 포장마차 보호비 인상보다 포장마차 아줌마 생계를 더 걱정하는 두목 강대봉, 칼장수하는 아버지덕분에 이름마저도 칼날인 칼날, 동생들은 적에게 다 이겨도 자신은 지고, 강대봉 대신에 매 맞는게 마음 편한 흥구, 남은 것 살밖에 없는 돼지. 성실한 고등학생이었다가 친구들에게 왕따당하고 일진회에게 맞기만하다가 마침내 깡패가 된 그래서, 고지식한 한표. 이들 중에 우연히 말려든 아기 '철수'가 벌이는 화끈한 코미디이다. 모두가 독특한 개성에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육아까지 끼어드니 끊임없이 폭소를 유도한다.

반면 '어덜트 베이비'는 철저히 아기가 된 야쿠자 '별남' 혼자의 이야기다. 바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인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 등 연출된 컷도 철저히 별남이가 본 시각에서 그려져 있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내려다 보고, 별남이가 보는 세상은 같은 또래의 유아들 시각이다. 대사의 대부분은 '아기가 된 야쿠자' 별남이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 만화의 매력도 바로 별남이의 대사이다. 아무런 말없이 웅얼거리고 있는 아기를 지켜보면 도대체 이 아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는 알아볼까, 배고픈 것은 느낄까? 이런 끝없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작가는 바로 이 궁금증을 파고든다. 이런 궁금증속에 바로 주인공 별남이의 황당하고도 기발한 생각이 자리한 것이다. 이 작품의 재미도'아이도 모든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라는 점이다. 낳아준 어머니를 여자로 생각하고, 젖을 먹으면서도 응큼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날이 가면서 자신의 몸인 아이를 닮아간다. 이 작품의 특징은 역시 상세한 어린아기의 생각읽어내기다. 누가 이렇게 귀여운 아이의 얼굴에서 이런 생각이 나올거라고 생각하겠는가? 이런 것이 아이의 몸과 어른의 생각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어쩔 수 없는 공통점

육아를 소재로 한 점빼고도 두 작품은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긴장감이다. 〈키드갱〉에서의 건달들. 아기에게 장난감으로 칼을 준다. 그런데, 이 아기는 능청맞게 이 장난감을 갖고 논다.
〈어덜트 베이비〉의 별남이. 엄마의 술을 뺏아먹으려다가 어린아이에게 술이 너무 독해 여자 친구 '사라'가 왔는데도 잠이 들어버린다.
두 작가 모두 재미있는 소재인 육아를 더 재미있게 풀어내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장치인 건달들의 육아와 아기가 된 건달을 끌어다 붙여다. 그리고, 두 소재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이것이 바로 작가들의 재능인가 보다.

특히, 〈키드갱〉의 신영우씨는 신인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힘을 보여준다. 코믹물이면서도 세련된 그림하며, 건달들이 등장하면서도 멋있는 싸움판 벌이려 하지 않는 자제력.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코믹물로 만들어 버린다-황소장 대 강대봉 편은 더욱 그렇다. 신영우씨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된다.

일상의 소재를 일상적이지 않게 풀어낸 두 작품은 각각으로도 수작이다. 그러나, 한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서로 비교해서 보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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