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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인물 잡아들인 카다피, 시위 확산 ‘부메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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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 03면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다음 차례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될 것이란 내용의 피켓을 든 미국 남성이 18일 사우스다코타 주의 연방법원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우스다코타=AP 연합뉴스]

‘중동 민주화 도미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가.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에서 꽃을 피운 민주화 혁명이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번지는 아랍권 민주화 시위, 흔들리는 리비아

시위의 불똥이 튄 나라 가운데 가장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나라는 리비아다. 올해 집권 42년째로 세계 최장수 통치 기록을 해마다 연장하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의 철권통치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상징성 때문이다. 카다피는 1969년 국왕 이드리스 1세가 외국여행을 떠난 틈을 타 쿠데타를 감행해 권력을 잡은 뒤 의회와 헌법을 폐기하고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한때 반미 국가의 대표주자 격이던 리비아가 테러 지원국가로 국제사회에 낙인찍혀 있다가 최근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개방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는 점도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다. 더구나 이 나라는 중동에서 시민혁명이 성공한 두 나라, 즉 서쪽의 튀니지와 동쪽의 이집트 사이에 끼어 있다.

리비아 시위의 중심지는 수도 트리폴리가 아닌 제2의 도시 벵가지다. 트리폴리 동쪽으로 1000㎞ 떨어진 항구도시 벵가지는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를 받을 때부터 늘 통치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한 저항의 도시다. 이번 시위도 15일 벵가지에서 처음 시작됐다. 아부살림 교도소 학살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 페티 타르벨이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이날 체포되자 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이 경찰서로 몰려가 그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반카다피 시위가 촉발됐다. 중동의 시민혁명이 리비아로 번질 것을 우려한 당국이 요주의 인물들을 미리 잡아들여 사태를 차단하고자 한 게 오히려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아부살림 학살사건은 96년 카다피 원수의 명령에 따라 특수부대가 교도소에 진입해 수감자 1000명 이상을 살해한 사건이다.

시위는 순식간에 동부의 다른 도시 알바이다 등 다섯 곳으로 확산됐다. 리비아 당국은 탱크를 앞세운 진압군을 투입했으나 실탄 발포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자 시위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19일에는 특수부대가 시위대 캠프를 급습해 강제해산에 나섰다. 한 목격자는 “벵가지는 유령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시위 과정에서 8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리비아 당국은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트리폴리에서는 카다피 국가원수를 지지하는 보수세력이 주도한 대규모 친정부 집회가 열렸다. 시위에 시위로 맞서는 ‘맞불 작전’을 쓴 것이다. 또 카다피의 친위세력인 혁명위원회는 웹사이트에 게재한 성명을 통해 “혁명세력과 국민은 모든 소규모그룹의 모험주의에 날카롭고 폭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의회는 문을 닫고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카다피의 아들이 운영에 관여하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 쿠리나는 의회가 다시 열리면 정부 개혁을 위한 조치를 단행하고 국가 관리들도 다수 교체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다피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옹호자를 자처하며 세계 각지의 반체제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왔다. 하지만 정작 이웃 나라인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강하게 비판하며 혁명의 물결이 국경을 넘어오는 걸 막느라 안간힘이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 수출로 매년 50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 생활 수준은 석유 하나 없는 이웃 나라 튀니지보다 낮다. 장기집권에 따른 특권층의 부패로 빈부격차가 심하고 실업률이 높다. 69세의 카다피는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은 젊은 층은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를 전파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집트 이후 붕괴 위험이 높은 국가에 리비아를 6위로 꼽으면서 “소셜미디어 사용 비율이 20%만 된다면 가장 먼저 붕괴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카다피의 강경진압 태세가 확고해 리비아 시위의 향방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왕정 타도 구호 등장한 바레인
시민혁명의 물결은 작은 섬나라 바레인까지 왔다. 14일 시작된 바레인의 시위는 18일 절정에 이르렀다. 수도 마나마의 진주광장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집결했다. “알칼리파 왕정에 죽음을”이란 구호가 나왔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고 최루가스를 뿌리는 등 강경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인구 70만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중동 국가들의 연쇄 시위 가운데 처음으로 왕정 타도 구호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걸프 연안의 산유국들은 왕정을 채택하는 나라가 많다. 시민혁명에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는 공화제 국가다. 만약 바레인에서 시민혁명이 성공하면 공화제 국가에서 시작된 민주화 도미노가 왕정 타도로까지 번지는 첫 사례가 된다. 그렇게 되면 중동의 대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왕정제 국가들도 거대한 흐름에서 비켜날 수 없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걸프협력회의(GCC) 외무장관들은 마나마에서 긴급 비밀회의를 했다.

또한 바레인이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란 점도 중동 정세에 파급력이 크다.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는 민생경제 악화가 시위의 도화선이 된 튀니지나 이집트와 달리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소외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바레인은 시아파가 인구의 70%를 차지하지만 수니파인 알칼리파 가문이 40년간 권력을 독점해 왔다. 만약 시아파 시위대에 의한 반정부 시위로 바레인의 권력 향배가 바뀐다면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이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중동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32년간 집권하고 있는 예멘에서도 18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예멘은 알카에다 등 과격 이슬람세력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어서 시위가 엉뚱한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8일 수도 사나에서 200㎞ 남쪽에 있는 타이즈의 후리야(자유) 광장에서는 시위 장소에 누군가 수류탄을 던져 시위 참가자 2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시위 도중 차량 한 대가 광장으로 접근한 뒤 누군가 시위대에 던지고 달아난 것이다. 1만 명에 이르는 시위대는 부상자를 후송한 뒤 시위를 계속했다. 인근에서 살레 대통령 지지 집회를 열던 친정부 시위대 1만 명과의 충돌도 일어났다. 남부 도시 아덴에서는 반정부 시위 도중 경찰 발포로 3명이 숨졌다. 살레 대통령은 2013년 임기 종료와 함께 물러날 것이며 권력을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시위대는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8일째 시위를 이어 갔다.

이 밖에 요르단·이란·알제리 등지에서도 튀니지 재스민혁명과 이집트 모바일혁명의 영향을 받은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부자 세습에 의한 강성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반정부 시위를 도모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슬람과 민주주의 양립 시험대
중동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 20세기 초·중반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했다. 그 과정에서 군이 중심 역할을 했다. 군 엘리트가 권력을 잡고 장기통치하는 체제가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유형은 이슬람의 전통대로 왕정을 통한 권력 세습이다. 어느 유형이든 선거를 통한 서구식 대의민주주의제도는 무시됐다. 미국은 냉전시대 옛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독재정권을 지원했고 민주주의보다 지역 안정을 선호했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지역 안정을 우선시했다. 중동 국가들에 30~40년에 걸친 장기독재 정권이 당연한 듯 자리 잡은 이유다.

하지만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중동의 장기통치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독재자들이 대부분 고령이 됐다는 점이다. 이런 한계를 세습으로 극복하려는 흐름이 있다. 시리아에서는 2000년 부자간의 권력 이양이 안정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예에서처럼 중동 국민은 권력 세습에 대한 거부의사를 명확하게 표출하기 시작했다.

또한 장기집권과 권력 독점에 따른 부패가 일상화되면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실업률은 높아지는 등 국민의 불만이 커져갔다. 이런 불만이 단순한 불만에 머무르지 않고 민주화 시위라는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 데는 인터넷·소셜미디어 같은 신매체와 아랍권 전체를 커버하는 위성방송 알자지라 등에 의한 정보 소통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구 구성에서 젊은 층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중동의 민주화 도미노 현상은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중동 아랍 등 이슬람권에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이른바 ‘아랍 예외론’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티머시 애시 옥스퍼드대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 9일자에 이렇게 썼다. “아랍인 또는 이슬람 신도들은 자유와 인권, 인간의 존엄성 등에 대해 아직 준비가 덜 돼 있다는 문화결정론이 있었지만 이번 (이집트) 혁명으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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