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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대가 너무 값싼 탓? … 뿌리치기 힘든 드라마·가요 베끼기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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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표절된 작품이라는 전문가의 감정 결과가 나왔다. 15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서울대 ‘기술과 법 센터(센터장 정상조 법대교수)’는 2009년 종영한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뮤지컬 ‘무궁화의 여왕 선덕’을 표절한 것이라는 내용의 감정소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콘텐트 제작사인 ㈜그레잇웍스 대표 김지영씨는 지난해 1월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며 MBC와 드라마 작가를 상대로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민사 15부는 서울대 기술과 법 센터에 표절 여부에 대한 감정을 의뢰해 그 결과가 이번에 나온 것이다. 2003년 설립된 기술과 법 센터는 저작권·특허문제를 연구하는 서울대 법대 소속 기관이다.

 센터 측은 “두 작품 사이에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려운 유사성이 발견됐으며, 이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닌 순수 창작 부분”이라고 표절로 판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가 소송에서 주장한 뮤지컬과 드라마의 유사점은 크게 세 가지. ▶어린 선덕이 사막에 가서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설정 ▶선덕과 김유신의 사랑 이야기 ▶미실과 선덕이 권력을 놓고 강하게 대립한다는 것이다. 남부지법은 기술과 법 센터의 감정서를 증거로 인정하고 곧 재판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감정 결과와 재판부 판결이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에는 세 단어로 이뤄진 대사의 사용에 대해서도 ‘표절’로 판결한 판례가 있다. 영화 ‘E.T’의 대사 “E.T. phone home(E.T는 집에 전화 걸고 싶어요)”을 한 회사가 허락 없이 제품에 사용한 것에 대해 법원은 “ 핵심 대사이며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라고 판시했었다. 국내에서는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희곡 ‘키스’ 대사를 영화 ‘왕의 남자’가 그대로 사용해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었지만 법원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저작권 전문가들은 “표절 시비는 잦으나 피해 복구와 처벌은 적다”고 지적한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김혜창 법정책연구팀장은 “표절 판정 절차가 복잡하고 원고가 감정료를 물어야 해, 도중에 합의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표절로 인정돼도 싼 대가를 치르고 끝나는 셈”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진성호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표절로 논란이 된 가요 20곡에 20억원 이상의 저작권료가 지급됐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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