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석유시장 파동 위기]

중앙일보

입력

국제 석유 파동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주요 산유국중 하나인 이라크는 유엔의 `석유-식량 계획' 2주간 연장 조치에 반발해 이날부터 터키의 제이한항을 통한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고 유엔이 밝혔다.

남부 미나 알 바크르항을 통한 수출도 23일부터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 관영통신 INA는 모하메드 사에드 알-사하프 외무장관의 말을 인용, "석유-식량 연계 프로그램을 2주간 연장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2주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유엔과의 합의에 따른 제6차 석유-식량 프로그램이 지난 20일로 끝난 만큼 이제 더이상 이 프로그램에 따른 석유 수출도, 식량 의약품 구입도 안하겠다는 강경대응이다.

이라크의 이런 대응은 여러가지를 노린 다목적 포석이지만 무엇보다 세계 석유 시장의 위기를 부추기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유가를 무기로 미국과 영국 등을 압박해 유엔 제재 해제란 숙원을 달성하려는속셈이라는 것이다.

이라크가 석유수출을 전면 중단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선을 넘어설 가능성이 더욱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최근의 국제유가 급등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산유국들의 생산량 감축에서 비롯됐다.

산유국들이 지난 4월부터 석유생산량을 하루 210만배럴 줄인 이후 유가는 두배 가까이 뛰었다.

세계 경제 회복으로 석유 수요가 늘고 겨울철 성수기가 겹친 것도 유가상승의 원인이지만 기본적으로 유가는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였기 때문에 올랐다.

이라크가 수출해온 석유물량은 하루 210만4천여배럴에 달한다.

이는 세계 석유수요량의 거의 3%에 해당하는 물량이며 산유국들이 지난 4월 이후 유지하고 있는 감산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많은 물량의 석유수출이 전면 중단될 경우 국제유가는 폭발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그렇잖아도 겨울철 성수기를 앞두고 석유 수요는 계속 늘고 재고량은 격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산유국들의 감산물량과 똑같은 물량의 석유생산이 추가로 줄어든다면 유가는 치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라크의 석유수출 중단이 단시간내에 풀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라크는 그동안 유엔 제재의 무조건적인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안보리 회원국들은 이라크가 무기사찰을 받을 경우에만 제재를 풀겠다는조건부 해제안을 검토해 왔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국, 영국은 물론 프랑스나 중국, 러시아까지도 조건부 해제안을 제시하긴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무조건적인 유엔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이라크와 조건부 해제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 등 안보리 회원국들간에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이라크의 석유수출 중단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며 이럴 경우 석유시장의 위기도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이라크는 그동안 석유-식량 계획에 따라 석유를 수출한 대금 30억달러 정도를 계좌에 남겨놓았으며 이 정도면 석유를 수출하지 않고도 몇달 가량은 견딜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의 강경대응이 몰고 올 첨예한 대립이 의외의 돌발사태를 불러 일으킬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가 운영하는 바빌지는 22일 이런 사태를 의식한 듯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의 유엔조치 거부를 이유로 다음 달 7-9일 시작되는 라마단 이전에 이라크를 공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카이로=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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