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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크리에이터 ④ 음악감독 김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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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음악감독은 누구일까. 대다수 사람들은 ‘남자의 자격’ 이후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새로운 리더십의 아이콘 박칼린(44)을 떠올릴 터다. 하지만 실제 같이 작업하는 뮤지컬 배우들의 선택은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바로 ‘맘마미아’와 ‘맨 오브 라만차’를 진두 지휘한 김문정(40)씨를 넘버1 음악감독으로 뽑았다. 중앙일보와 BC카드 Loun.G가 뮤지컬 배우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무대 위의 크리에이터’ 시리즈 4회 음악감독편의 주인공은 김문정씨였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지휘봉은 “2007년 ‘맨 오브 라만차’ 공연 당시 조승우가 준 선물”이란다. 조승우에 대해선 “처음엔 깐깐했지만 볼수록 속정이 깊은 친구”라고 했다. [최승식 기자]


응답자 150명 중 무려 79명이 김씨를 택했다. 작곡·극작·안무·연출 등 전 분야를 통틀어서도 최다 득표다. 사실 외국 라이선스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뮤지컬계에서 음악감독은 매우 힘이 세다. “프로듀서·작곡가·연출가보다 음악감독이 최고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작품의 템포 조절, 오케스트라 구성 및 지휘, 배우 선발, 보컬 트레이닝 등 뮤지컬 핵심을 음악감독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설도윤 프로듀서는 “2000년대 초반 김문정의 출현 이후 누가 진짜 실력파이고 누가 엉터리인지 구분할 줄 아는 귀가 생기게 됐다”고 전했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얼마나 잘 나가고, 바쁜지는 지난해 활동을 훑어봐도 알 수 있다. 1월엔 자신이 직접 작곡한 ‘내 마음의 풍금’을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했고, 2월엔 ‘맨 오브 라만차’, 3월엔 ‘미스 사이공’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다. 5월엔 부산·대구 등을 돌아다니며 ‘맘마미아’ 전국 공연에 분주했고, 7월엔 국립극장 ‘키스 미 케이트’를 책임졌다. 8월엔 신작 ‘서편제’, 10월은 ‘명성황후’, 12월은 ‘영웅’ 등을 잇따라 무대화했다. “너무 일이 몰리다 보니, 스케줄 빼기가 조승우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돌 정도다. 정작 본인은 “물량공세처럼 많이 하다 보니 배우들이 낯이 익어 뽑아주었을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그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좀체 화를 내지 않는다. 말은 조근조근 하며 설득력 있고, 차분하지만 핵심을 파고든다. 배우들 역시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해 내는 음악감독” “그와 공연하면 왜 그때 이렇게 노래하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게다가 그는 격이 없고 친근하다. ‘살찐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이란 별명도 있다. 때론 공연 중에 이빨 사이에 김을 붙여 영구 흉내를 내고, 꺼벙이 안경을 쓰기도 한다.

 “막이 오르면 배우와 앙상블, 스태프들이 모니터로 저만 봐요. 마치 공사판 작업반장처럼 현장을 책임지는 거죠. 장기 공연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거든요. 어떡하겠어요, 대장이 살짝 망가져 주면 모두 배꼽 잡고 분위기 업(up)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죠.”

 그의 온화한 카리스마는 유년기 경험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초등학교 때 잘 사는 옆집에 가서 피아노를 쳤는데, 모욕에 가까운 무시를 당했어요. 아버지께서 당장 피아노를 사 오셨죠. 동네 아이들 다 불러다 쿵쾅거리고 치며 ‘음 찾기’ 놀이를 하곤 했어요.”

 중·고 시절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음악이 늘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바이올린·기타·하프 등 다양한 악기를 익혔고, 고적대·합창단 지휘를 했으며 남학생들과 록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나름 절대 음감을 가져 “오토바이 클락션 소리만 듣고도 단박에 ‘미레미레솔’이라고 따라했다”고 한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졸업 이후엔 키보드 세션맨으로 이문세·변진섭·김장훈 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노래방 반주 음악 몇 천곡을 녹음했어요. 그때 어떤 악기를 쓰는 게 좋은지, 편곡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다 알게 됐어요. 전 지금도·‘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고 믿어요. 단순한 이력보다 풍부한 경험이 진짜 실력인 거죠.”

글=최민우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다른 음악감독은 …

2위는 ‘지킬 앤 하이드’ ‘몬테크리스토’의 음악감독을 맡은 원미솔(34)씨다. 18표를 얻었다. 원씨는 최근 ‘뮤직 인 마이 하트’ ‘천사의 발톱’ 등 작곡 분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박칼린씨는 15표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1995년 ‘명성황후’로 한국 뮤지컬 음악감독 1세대인 그는 최근엔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퀴즈쇼’의 연출, ‘아이다’의 국내 연출 및 음악 슈퍼바이저 등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4위는 ‘모차르트’ ‘살인마 잭’ ‘삼총사’ 등 유럽 뮤지컬을 주로 해 온 이성준(30)씨다. 5위에는 ‘돈 주앙’‘김종욱 찾기’로 이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한 양주인(30)씨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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