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 ‘신공항’ 명쾌하게 설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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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함께 크게 주목받는 건설 공약이 동남권 신공항이다. 이 계획은 2006년 말에 등장했다. 2027년이면 김해공항의 처리능력이 한계에 달할 것이란 판단에서 영남권 지방자치단체가 신공항 건설을 건의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며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현재 정부는 부산 가덕도와 밀양 하남읍 두 곳으로 후보지를 압축했으며 3월 말 최종 입지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10조원이 투입되는 거대 사업인 데다 공항이라는 대중시설이어서 지역 이해관계에 영향이 크다. 두 지역의 자치단체는 시민추진위를 만들거나 궐기대회를 열면서 경쟁하고 있다. 부산과 경남·북 의원들 간에 로비 경쟁도 치열하다.

 정부의 신공항 정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단성과 소통의 부족이다. 우선 대선공약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너무 끌었다. 국토해양부는 당초 2009년 말에 후보지를 발표하려 했으나 정치권과 지역 내 갈등을 우려해 연기했다. 지난해에는 세종시와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에 밀렸다. 발표가 지체되면서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은 점점 과열됐다. 지금은 과학벨트와 겹쳐 소음이 더 커지고 있다.

 이제 과연 신공항이 필요하냐는 타당성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건설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는 과잉 개발에 대한 ‘실패의 추억’이 많다. 1987년 대선 때 제시됐던 새만금 개발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화호도 완공 초기엔 수질오염에 시달렸다. 행정도시 공약은 위헌 결정을 받기도 했다. 이 계획이 변형돼 탄생한 세종시는 여전히 타당성이 안개에 싸여 있다. 지방 공항의 경우 전국 14개 중 11개가 적자다. 김제·예천 공항은 건설 도중 포기됐으며 울진·양양 공항은 건설된 후 이용객이 적어 문을 닫았다.

 많은 국민이 이런 ‘실패의 추억’을 갖고 있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해소해주는 노력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3월 말 입지 발표 후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타당성에 문제가 있으면 계획 자체가 백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설득력이 없는 논리다. 입지선정 전에 정부는 국민에게 신공항이 왜 필요한지부터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 판단이 확실하면 과감하고 신속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지금도 갈등이 뜨거운데 입지를 정해 놓은 후 “조사결과 타당성이 없다”고 하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신공항은 정부의 소통이 중요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정부의 설명만 명쾌하면 여론은 영종도 공항처럼 신뢰를 보내줄 것이다. 대다수 여론이 그러하면 탈락한 지역도 반발하기 힘들 것이다. 정부는 갈등에 겁을 먹지 말고 과학적인 설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도 지역끼리 다투기 이전에 신공항 사업의 필요성부터 유권자에게 알려야 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처럼 혼란의 주된 책임은 소통 부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