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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매몰지는 ‘세균탱크’… 지하수로 퍼지면 ‘질병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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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구제역 가축 매몰지에서 각종 병원성 세균이 발견돼 매몰 사체와 이에서 발생하는 침출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축 매몰지가 붕괴하거나 침출수가 유출되면 병원성 세균이 주변으로 확산돼 심각한 보건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합동조사단의 현장 실태조사 첫날인 10일 경기도 양평·남양주와 강원도 춘천·원주지역 32곳의 매몰지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한강 상류지역의 구제역 가축 매몰지 32곳 중 절반인 16곳에서 붕괴와 침출수 유출로 인해 오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11곳은 하천변에 위치해 침출수가 유출될 경우 수질오염이 우려됐다. 4곳은 빗물을 매몰지 바깥으로 배출할 배수로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본지가 이날 환경부로부터 입수한 ‘가축매몰지 토양 재활용을 위한 생물학적 안전성 평가연구’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충남 천안과 전북 정읍 등 6개 조류 인플루엔자(AI) 매몰지에서는 클로스트리듐 속(屬) 세균이 150여 개 시료 중 30% 이상에서 검출됐다. 클로스트리듐 속 세균에는 상처 부위를 감염시키는 파상풍균과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보툴리누스균, 상처난 피부에 감염해 가스 괴저병을 일으키는 페르프린젠스균 등이 포함돼 있다.

조사에 참여한 경성대 생물학과 조영근 교수는 “무산소 상태에서 증식하는 이들 세균은 포자를 형성해 오염된 지하수를 따라 떠돌아다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마련한 ‘가축 매몰지 환경관리 지침’에서 매몰지 오염상황 모니터링하는 조사항목에 ‘클로스트리듐 페르프리젠스’라는 세균을 포함시킨 바 있다. 이와 함께 역시 포자를 형성하는 바실러스 속(屬)의 세균도 매몰지에서 많이 검출되고 있다. 바실러스에는 탄저균·식중독균이 포함된다.

국내에서는 1994년 이후 경주·홍성 등에서 다섯 차례나 소 탄저병이 발생했다. 제주대 의대 이근화 교수는 “바실러스균은 평소 땅속에 포자 형태로 존재하다가 동물 사체 같은 영양분을 만나면 대대적으로 번식한다”며 “살모넬라균과 캄필로박터 등 식중독 세균도 여름철에 습도·온도가 상승하면 대대적 번식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구제역·AI 바이러스는 50도 이상의 온도에서는 급격히 감염성을 잃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매몰지 안에서는 생석회가 물과 반응해 소석회로 되면서 열이 발생하고, 사체가 썩을 때도 열이 나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측의 설명이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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