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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생은 왜 반한 감정 갖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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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국유학생 신년 하례회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건배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400여 명이 참석해 단합을 다짐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지난달 14일 모 대학이 중국인 유학생과 관련한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짜 유학생’ 140명을 퇴학 조치한다는 발표였다. 학적부에 이름만 걸어놓고 실제로는 돈벌이에 열중한 유학생들을 쫓아낸 것이다. 그중 일부 학생은 수백㎞ 떨어진 곳에 거주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에 제출한 어학증명서가 위조로 드러난 사례도 있었다.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다. 일본 북부 아오모리 대학에서 생긴 일이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신선한 충격”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와 대학들이 중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해 뛰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역주행’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을까? 노(No),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업을 못 따라가 자퇴할 수는 있어도 학교에서 퇴학시키는 사례는 아직 없다. 그렇다고 한국에 온 유학생들이 모두 잘한다는 뜻은 아니다. 학교 현장으로 가보자. 수도권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모 교수. “50명의 수강생 중 30여 명이 중국인 유학생입니다. 그중 10여 명은 2~3주째 강의부터 결석합니다. 수강 학생 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내용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기들끼리 구석에 모여 잡담하기 일쑤죠. 한국 학생들은 수업을 망치는 그들을 원망의 눈초리로 봅니다.”

김 교수는 “수업에 빠진 학생들은 대부분 인근 공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숨을 내쉰다. 한국 학생과 중국인 유학생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기자가 “F학점을 주면 될 일 아니냐”고 묻자 “학교 정책상 그건 안 된다”고 대답했다. 더 많은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대학 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이란다.

이런 현상은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다. 유학생 8만4000여 명 중 70%가량인 5만8000여 명이 중국 학생이기 때문이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몇 년째 되풀이되고 있지만 학교와 교수, 교육부는 쉬쉬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인 유학생 문제는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 문제를 연구해 온 목포대 신정호 교수. 그는 “유학생을 ‘돈’으로 보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교육이 비즈니스로 전락했다는 한탄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중국인 학생 유치에 발벗고 나선 것은 2000년대 초. 고교 졸업생이 줄면서 신입생 유치가 어렵자 상당수 대학은 재정난에 직면했다. 그래서 중국을 탈출구로 선택했다. 유학생 유치 경쟁이 뜨거워지다 보니, 어학능력·고등학교 성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무조건 유치하고, 적당히 언어교육 시킨 다음 입학시켜 학기당 300만~500만원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유학원에 1년 학비의 20~30%를 거간비로 주고, 많이 보낸 중국 고교에는 4명당 1명을 공짜로 받아들였다. 교육인지 장사인지 모호하다.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의 유학생 비율은 7% 안팎입니다. 굳이 그것을 지키는 것은 유학생을 관리하는 적정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전체 학생의 20%를 넘는 곳도 많습니다. 유학생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신 교수의 말대로 각 대학은 유학생 관리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서울의 모 대학 무역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천(陳·23)씨. 한국어능력시험 4급 수준인 그는 기자의 말을 거의 못 알아들을 만큼 한국어 능력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모든 학과 점수가 ‘C+’ 이상이다. 그는 “C+ 이상을 받아야 장학금이 나온다”며 “교수님도 그걸 알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그 이상 점수를 준다”고 말했다. 학교는 오히려 유학생이 빠져나갈까 걱정한다. 비즈니스로 치자면 ‘을(乙)’의 입장이다. 이 학교에는 지금 1400명의 중국인 유학생이 재학 중이다.

그럼에도 유학생들의 복지 수준은 열악하다. 특히 기숙사 문제는 심각하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친구들과 하숙 또는 자취를 하거나, 고시원에 들어가 새우잠을 잔다. 수도권 대학이 더 열악하다. 서울 D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양(楊·27)씨 역시 그런 경우다.

“월 23만원을 주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껴도 월 생활비가 35만원을 넘습니다. 집에서 돈을 가져올 수 없는 처지여서 아르바이트에 매진하고 있죠.”
그는 겨울방학인 요즘 명동의 한 치킨집에서 일하고 있다. 춘절 명절에도 고향 시안(西安)에 못 갔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 중국 유학생 중 기숙사 입주 비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숙사 여건이 좋은 몇몇 지방대학을 빼면, 수도권에선 거의 다 스스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이 통제될 리 없다. 일부 여학생은 음란업소에 기웃거린다. 제3자를 통해 만난 칭다오(靑島) 출신 유학생 A씨(23)는 “신당역 근처 N키스방에서 일한다”고 했다. 30분에 3만5000원을 받으면 그중 절반가량이 그녀의 몫으로 돌아온단다. 키스방 인터넷 카페에서는 그녀를 이렇게 소개한다. ‘빅토리아, 168㎝/ 50㎏/C+컵/23세. 글로벌 시대의 중국 유학생. 서울 소재 유명 대학 재학 중’.

유학생 맞을 준비가 안 되기는 한국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인 유학생을 보는 시각이 극히 부정적이다. 부산 B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류(劉·23)씨. 산둥(山東)성이 고향인 그는 연 7만~8만 위안(1230만~1400만원)을 집에서 가져다 쓰며 비교적 ‘풍족한’ 유학생활을 했다. 졸업을 앞둔 그에게 ‘한국 유학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솔직히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과제 팀을 조직할 때 민망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국 학생들은 팀을 짤 때 중국 유학생과 함께 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합니다.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땐 굴욕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한·중 학우 간에 소통이 안 되니 서로 좋아할 리 없다. 중국인 유학생끼리만 뭉치게 된다. 한국 학생과의 거리가 멀어지니 한국 생활·문화와도 접촉도가 떨어진다. 한국 이미지가 좋을 리 없다.

끝이 좋다면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취업 말이다. 한국에 유학 온 이유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하나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출구가 없다. 2월 졸업을 앞둔 서울 D대학 리(李·25)군은 한국에서 취업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허탕쳤다. 결국 고향 칭다오(靑島)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서도 과연 ‘5년 고생’에 걸맞은 직장을 구할지 모르겠다.” 리군의 고백이다.

서창배 신라대 교수는 “유학생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5~2006년 신입생들이 본격적으로 졸업하는데 취업 문은 꽉 막혀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경우 중국 유학생 졸업자 가운데 30%를 자국에서 흡수하고 있다”며 “중국 유학생을 더 받을 생각이 있다면 한국도 범정부 차원의 취업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교육과학부가 뒤늦게 입학생들의 한국어 능력시험 급수를 높이겠다고 나선 정도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실태조사 결과 22개 대학을 부실학교로 선정해 개선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지나친 규제로 유학생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초강경 조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교육부는 내년까지 유학생 10만 명 유치 목표를 세웠다. 교육부는 유학생 수를 대학 국제화의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 정부가 가짜 유학생을 양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박상수 충북대 교수는 “지금 우리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고름을 터뜨리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있다”고 말한다. 행정당국의 무리한 국제화 기준→대학의 유학생 유치 경쟁→부실 유학생 증가→유학생 관리 부실→유학생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대→졸업 후 취업난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라는 얘기다. 박 교수는 “이대로 가면 중국 내에서 ‘한국 유학은 대입 낙방자들의 피난처’라는 인식이 확산돼 장기적으로 유학생 유치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아오모리 대학의 140명 퇴학 처분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다. 이 대학의 입장은 확고했다. “공부에 뜻이 없는 유학생은 학생이 아니다.”

한우덕·이현택 기자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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