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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수리비 비싼 차’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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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

자동차 메이커들은 신차를 설계할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안전성에 가장 집중하지만 경량화를 통한 연비 개선, 그리고 수리할 때 비용이 저렴하게 나오는 설계가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중형차 이상에서는 연비와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강철보다 70% 이상 비싸지만 절반 이상 가볍고 단단한 알루미늄을 많이 사용한다.

 지난달 24일 보험개발원은 ‘국산 중·대형 승용차의 수리비 평가’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시속 15㎞ 속도로 충돌한 결과였다. 자료에 따르면 르노삼성 SM5와 현대 신형 그랜저의 수리비가 경쟁 모델보다 최대 1.8배 비쌌다. 그러면서 보험개발원은 수리비가 비싼 차는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리비가 비싼 속사정은 달랐다. SM5는 국산 중형차 중 유일하게 알루미늄으로 보닛을 만든다. 무게를 가볍게 해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로 고급차인 재규어 XJ나 아우디 A8은 차체 전부를 알루미늄으로 만든다. 알루미늄은 내구성이 좋아 사고 없이 오래 타면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신형 그랜저에는 경쟁 모델에 없는 첨단 기능을 여럿 달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부품 이 비쌌고 수리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생겼다. 특히 소비자의 눈을 자극하는 충돌시험 화면이 TV를 타면서 해당 업체들은 곤욕을 치렀다. 대부분 “왜 수리비 바가지를 씌우느냐”는 항의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아 K7에 없는 첨단장치를 그랜저에 달다 보니 부품가격이 비싸졌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알루미늄 보닛을 일반 강철과 비교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할 정도다. 보험개발원 주장대로라면 수리비가 싼 부품을 많이 쓰는 차가 좋은 차라는 인식이 들 수 있겠다.

 얼마 전 자동차 보험수가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여기서 소비자들은 ▶경미한 충돌에도 무작정 입원하는 풍토 ▶사고 나면 무섭게(?) 달려오는 견인차와 얽힌 고비용 구조 ▶한몫 잡아보려는 병원과 수리점 ▶보험사의 불필요한 낭비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청회에 다녀온 한 독자가 알려온 내용인데, 보험개발원에 그대로 전달해주고 싶다.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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