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운하 봉쇄보다 시위 확산이 두렵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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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04면

“수에즈 운하가 봉쇄돼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모신 칸(사진) 전 국제통화기금(IMF) 중동지역 이사의 진단이다. 그는 중동경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이집트 사태의 파장을 알아보기 위해 4일 그를 긴급 인터뷰했다.

모신 칸 전 IMF 중동담당 이사가 진단한 세계경제 영향

-이집트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하다.
“시위가 발생한 지 2주일 정도 지났다. 현재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알 수 없다. 경제적 파장을 정확하게 예측하기엔 너무 이르다. 이번 시위가 이집트 실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직 분명치 않다.”

-글로벌 시장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이 이집트 사태에 정확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집트 주가는 거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16% 폭락했다. 현재 이집트 은행 시스템은 중단돼 있고 증권시장에서는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태가 주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간접적으로 두바이 등 걸프 지역 주가를 통해 사태 파장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사태 직후 걸프 지역 주가는 평균 5% 정도 하락했다.”

-투자자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주가 하락으로 걸프 지역 증시의 시가총액 500억 달러가 사라졌다. 이는 투자자들이 이집트 사태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막연히 두려워할 게 아니라 좀 더 분석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 경제가 걸프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작다.”

-그것밖에 되지 않는가.
“이집트 인구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이집트가 세계 경제뿐 아니라 걸프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이번 사태로 이집트 실물 경제가 붕괴해도 세계 경제가 받을 충격은 크지 않다.”

-금융 측면은 어떤가.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들이 이집트에 빌려준 돈은 500억 달러 정도다. 대부분 유럽 은행들이 빌려줬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공급한 자금은 50억 달러 수준이다. 이 돈을 다 떼인다고 해도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당할 충격은 크지 않다.”

칸은 단순히 걸프 지역 경제 전문가만은 아니다. 그는 런던정경대학(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인 1972년 IMF에 들어가 금융분석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96년엔 IMF 연구소장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 전반을 섭렵한 뒤 글로벌 핫머니가 어떻게 신흥시장에 들어가 이탈하는지를 주로 연구했다.

-국제 원유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많은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대목이다. 내가 보기에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이집트 사태가 국제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첫 번째 경로는 무엇인가.
“원유 유통망의 일부가 무너지는 일이다. 수에즈 운하 봉쇄가 대표적인 예다. 많은 전문가가 시위 때문에 수에즈 운하가 막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또 그들의 예측대로 수에즈가 막히더라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수에즈 운하는 세계적인 원유 통로가 아닌가.
“세계가 하루에 소비하는 원유는 하루 8800만 배럴 정도다. 수에즈 운하를 통해 배달되는 원유량은 하루 200만~300만 배럴 수준이다. 운하가 봉쇄되더라도 다른 루트로 그 정도는 아주 신속하게 보충할 수 있다.”

-이집트 사태가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칠 두 번째 경로는 무엇일까.
“시위 사태의 전염이다. 이집트 시위는 튀니지 사태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로 전염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어떠 나라로 번질 수 있나.
“알제리 사회와 정치가 이집트에 이어 불안해질 수 있다. 시리아와 요르단·리비아 등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질 수 있다. 산유국인 알제리와 리비아는 정치 상황이 이집트와 비슷하다. 실업률이 높고 국민 대다수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점도 이집트와 닮았다. 알제리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집트 사태가 다른 나라로 번지더라도 산유국으로 확산되지 않으면 국제 유가는 일시적으로 출렁거리는 데 그칠 것이다.”

-사태가 산유국으로 확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집트 사태가 산유국으로 번지는 일은 수에즈 운하의 봉쇄와는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원유 생산 자체가 차질을 빚는다. 이후 원유값이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믿음, 구체적으로 말해 세계 경제 회복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 이 믿음이 깨지면 모든 자산 가치에 대한 재평가(주가 조정 등)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현재 글로벌 주가는 세계 경제가 빠르
게 회복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집트 사태의 전염 메커니즘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이집트 국민 대다수는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됐다. 젊은 층은 대학을 졸업해도 거의 취직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 경제 엘리트들이 각종 규제와 장벽으로 기득권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니 기업가 정신이 죽고 투자가 줄어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가 걸프 지역 다른 나라에서도 심각하다.”

-이집트 사태가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번질 수 있을까.
“사우디나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 국민도 비슷한 처지다.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국제 자원가격 상승에 따른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와 쿠웨이트 국민이 이집트 국민처럼 기존 체제에 반발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왜 그럴까.
“사우디나 쿠웨이트 등의 권력자들은 국민에게 대학 교육을 공짜로 시켜주고 주택도 거저 줬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후하게 생활비를 대주고 있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체제는 그런 혜택을 베풀 수 없었다.”



모신 칸 은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지대인 펀자브에서 태어났다. 펀자브대를 졸업한 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국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영국과는 다른 분위기를 경험하기 위해 경제학 석사학위는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받았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박사학위는 LSE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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