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각가 전뢰진씨, 경인여대서 고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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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조각의 개척자인 전뢰진(예술원 회원)씨가 고희전을 인천시 계산동에 있는 경인여자대학에서 갖는다.

23일부터 3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전씨와 그 제자들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경인여대 실내외에 전시될 작품은 모두 59점. 이중 전씨의 조각품은 '낙원가족', '아침', '자애', '모자', '인간가족', '엄마와 삼남매', '나들이' 등 15점으로, 단란한 가족애와 훈훈한 인간애가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그의 제자와 그 제자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여 이채를 더한다. 미술계 중견으로 성장한 강관욱.유영교.고정수씨와 신진작가로 작품세계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는 한진섭씨가 바로 그들이다. 다시 말해 이번 조각전은 전씨의 조각 계보를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승과 제자 '3대'가 한 자리에 작품을 나란히 선보이는 전시는 이것이 처음이다.

전씨의 고희는 원래 지난해였다. 고희전을 갖지 않겠다고 한사코 손사래를 젓던 그는 평소 자신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여온 김길자 경인여대 학장의 권유에 '굴복'해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

학교측은 학교측대로 전씨와 제자들이 그동안 기증에 가깝도록 작품을 실비 제작해준 데 대한 감사의 답례이기도 했다. 경인여대는 10점 가량의 전씨 작품을 구입, 교정에 전시했는데 이중 대표작 '낙원가족'은 대학의 상징물로 여겨질 정도다.

서울대와 홍익대를 차례로 나온 전씨는 석조각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미술계에 그 씨앗을 처음으로 뿌렸다. 당시가 50년대 초반으로, 조각이라고 해봐야 청동과 석고가 고작이었던 그때에 대리석이나 화강암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이는 전씨밖에 없었다.

그는 전북 익산에서 나는 대리석을 이용해 투박하나 정감넘치는 인물상들을 연평균 8점꼴로 조각해내고 있다. 그가 26살 때 석조각에 본격 뛰어들었으니까 현재까지 제작된 작품은 줄잡아 400점에 이른다. 서양의 조각은 마무리작업을 대부분 연마에 의존하는 데 비해 그의 작품은 정으로 일일이 쪼아낸다는 점에서 특성을 갖고 있다.

손길이 많이 가는 정 작업을 하는 까닭에 그의 작품은 소박.단순하면서도 친근미와 부드러움이 넘쳐난다. 여기에 작품의 일정부분을 관통시키는 투각으로 입체감을 더하고 있으며 일면이 아닌 다면 조각으로 생동감을 한껏 살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전씨는 '내 작품은 뚝배기에 담긴 된장국이라고 보면 된다'고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김 학장도 '전 선생님의 조각은 자연과 인간이 편하게 어울려 있으며 돌이라는 소재상의 차가움을 툭툭 털어버린채 따스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기가 막히게 담아내고 있다'며 찬사를 보낸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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