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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체제 흔들려는 인사 아니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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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봉욱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가 30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검 대회의실에서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이뤄진 고검장급 인사의 배경은 무엇일까. 김준규 검찰총장 임기 만료 7개월을 앞두고 단행된 인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법무부·검찰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사 결정 과정에 관련된 청와대와 법무부·검찰 관계자들을 통해 전말을 들어봤다.

 고검장급 인사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검찰 출신인 김희옥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후임자 인선이 시작된 지난해 말이었다.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 교체설이 급부상했다. 업무가 과중한 중앙지검장을 1년5개월이나 한 데다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민간인 사찰 사건 등 주요 수사가 비판 여론에 부딪히면서 보직 순환 인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전직 검사장 출신인 김&장 법률사무소 소속의 박한철 변호사가 재판관으로 지명되면서 교체 움직임은 가라앉았다. 다시 기름을 부은 건 지난 24일 서울서부지검의 영장 무더기 기각 사태였다. 남기춘 지검장이 한화 임원 5명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며 승부수를 던졌지만 법원에서 또 다시 기각된 것이다. 넉 달 반 동안 진행된 수사에서 횡령·배임 혐의만 밝혀내는 데 그쳤다. ‘별건 수사’ ‘밀어붙이기 수사’ ‘오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자 청와대와 법무부는 조직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고검장급 검사 인사를 단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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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폭이었다. 대검의 한 간부는 30일 “이쪽(김준규 총장)은 소폭을 주장했고, 저쪽(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폭을 넓히자’고 했다. 김 총장이 사법시험 한 기 후배인 이 장관과 갈등 양상을 보이는 와중에 청와대가 법무부가 가져온 인사안을 승인하면서 게임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인사는 김준규 총장체제의 현재 구도를 흔들고 싶은 사람들이 한 것”이라면서 “차기 총장을 향한 경쟁구도가 본격화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남기춘 서부지검장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놓고도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법무부에선 남 지검장을 교체하려 했지만 김 총장이 강력히 반대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남 지검장 교체 의견이 청와대와 법무부 일각에서 제기된 건 사실이지만 조직의 동요를 불러올 수 있어 보류하기로 결론 난 상태였다”고 전했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이에 대해 “남 지검장의 수사 행태를 놓고 보자면 그런 경우 법무부 장관이 교체 인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인사에선 남 지검장은 대상자가 아니었다”며 “남 지검장이 지레짐작으로 나갔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법무부 측 얘기도 비슷하다. “남 지검장도 대상인 검사장급 인사는 계획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 지검장 측 얘기는 다르다. 그의 측근은 “남 지검장은 자신이 교체될 거란 ‘사인(sign)’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서 남 지검장은 김 총장 등 대검 수뇌부와 상의를 거치지 않고 사표를 냈다. 한 대검 관계자는 “김 총장은 남 지검장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사의를 밝히는 글을 올린 다음에야 사표 제출 사실을 알았다. 고검장급 인사까지 겹치며 마음이 착잡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남 지검장은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래 다 (때가 되면 사표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요청에는 “다 죽여 놓고 해부까지 하려고 하느냐”며 거절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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