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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 이후 권력 원천은 ‘총구’…무바라크, 군 출신 부통령 내세워 무마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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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된 지 닷새째인 29일(현지시간) 수도 카이로의 중심가인 타흐리르 광장에 수만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시위대 틈에 그대로 탱크가 놓여 있다. 시위대는 진압에 나선 경찰과 격렬히 대립했던 것과 달리 도심에 출동한 군인과는 별다른 충돌을 하지 않았다. [카이로 AP·로이터=연합뉴스]

시위 참가자들이 탱크 포신 위에 걸터앉아 있다. [카이로 AP·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최대 관심사는 시위대의 요구대로 호스니 무바라크(83·Hosni Mubarak) 대통령이 물러날 것인가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29일 대국민 연설을 자청, 내각 총사퇴와 정치·경제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 업무를 계속 수행하 겠다고 밝혀 사퇴 의사가 전혀 없음을 공언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처럼 강고하게 버티는 배경은 군(軍)이다. 아랍권 최대 병력(약 50만 명)의 이집트군은 무바라크 권력의 기반이다. 이집트군은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국가 인재의 원천으로 대우받고 있다. 시위대가 경찰과는 격렬히 대립해도 군과는 별반 충돌을 빚지 않은 이유다. 그런 만큼 무바라크의 운명, 나아가 이집트 정국이 어느 쪽으로 전개될지 열쇠는 군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나세르 전 대통령과 사다트 전 대통령이 각각 심장 발작(1970년)과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암살(81년)로 사망하기까지 종신 권좌에 머물렀던 것도 군이라는 권력기반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30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왼쪽)이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내각 회의를 하고 있다.

 곤경에 처한 무바라크도 군의 힘에 의지해 사태 수습을 도모할 가능성이 크다. 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당시 공군 사령관으로 전쟁영웅이 된 무바라크는 집권 이후 군부를 장악해 30년간 권좌를 지킬 수 있었다. 현재 군이 무바라크 에게 등을 돌리려는 움직임은 없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서정민(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군·정보기관·경찰, 이 세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무바라크가 사태를 극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가 군 출신 최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에 임명한 것도 군 주도 체제의 연속성을 확보하면서 남은 재임 기간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포스트 무바라크’를 책임질 정치적 구심점이 없다는 점도 무바라크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 시위자로부터 군인이 아이를 받아들자 주변의 시위대가 환호하고 있다. [카이로 AP·로이터=연합뉴스]

 반면 당장은 아니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은 결국 시간의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동문제 전문가 존 앨터먼은 “지금 무바라크의 소임은 권력 이양을 시도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그가 내년에도 대통령 자리에 있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빈곤층까지 시위에 가세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경우 무바라크가 군에 진압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에드워드 워커 전 이집트 주재 미 대사는 “군이 강제 진압에 나선다면 군뿐 아니라 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럴 경우 일부 군 수뇌부가 쿠데타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30일 “사미 아난 이집트 군 참모총장과 무함마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이 지난주 초 미국을 방문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집트 군부가 미국 국방부와 다음 조치를 협의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보도했다. 탄타위 장관은 술레이만 부통령보다 대중적 인기가 높아 무바라크의 잠재적 후계자로 거론된다고 슈피겔은 설명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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