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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에게 일자리를"34세 후보, 생계형 공약 돌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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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호 01면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파란이 일고 있다. 31일 치러지는 서울변호사회의 91대 회장 선거 때문이다. 임기 2년의 서울변회장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소속 변호사 7500명의 수장이다. 전국 사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서울변회는 이익단체일 뿐이지만 힘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은 최정환(50·연수원 18기), 정태원(56·15기), 오욱환(51·14기), 윤상일(55·9기), 조용식(51·15기), 나승철(34·35기), 김갑배(59·17기) 변호사 등 7명이다.

31일 서울변호사회장 선거 司試 1000명 세대의 반란

그동안 서울변회 회장 선거에는 많아야 3명 정도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이번에는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더 논란이 되는 건 출마자 숫자가 아니다. 전혀 새로운 선거 행태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선거의 핵심은 ‘청년변호사(청변)’다. 판검사 경력 없이 개업한 변호사 경력 5년 이하인 젊은 변호사들을 말한다. 해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는 약 1000명 중 법원·검찰·대형 로펌에는 500명 정도가 간다. 나머지 500명은 개업한다. 2001년부터 달라진 사법시험제도에 따라 양산된 이른바 ‘1000명 세대’다. 올해 서울변회 선거에서 이들이 엄청난 파워그룹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청변’을 대변하겠다며 34세짜리 변호사가 출사표를 던졌다. 법무법인 청목의 나승철 변호사다. 그는 공익법무관 복무를 마친 뒤 2009년 4월 개업했다. 개업 3년차인 신참 변호사다.
하지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1일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이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 315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나 후보는 8.9%로 1위를 기록했다. 오욱환 변호사가 7.3%, 조용식 변호사가 6.3%로 그 뒤를 이었다. 만일 31일 선거에서 나 후보가 당선되면 역대 최연소 서울변회장이 된다. 최근 20년간 당선된 서울변회장 중 최연소는 88대 이준범(당시 49세) 회장이었다. 현 90대 김현 회장은 53세의 나이에 당선됐다.

나 후보의 나이뿐 아니라 공약도 관심을 끌고 있다. ‘생계형 공약’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변호사들이 어떻게 살 수 있느냐. 오죽하면 내가 나왔겠느냐”며 젊고 경력이 짧다는 약점을 거꾸로 이용하고 있다. 체면을 앞세우고 점잔 빼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나 후보는 ▶로스쿨 졸업생의 변호사 합격률 30%대 축소 등 로스쿨제도 전면 재검토 ▶고용변호사의 휴가일수 보장 및 퇴직금 철저 지급 ▶출산한 여변호사를 위한 대체인력제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그동안 젊은 개업변호사들은 개업이 어렵고 일자리가 없어도 점잖은 법조계 문화 때문에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며 “계속 참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닝메이트인 두 명의 부회장 후보 중 한 명으로 29세인 손정혜(37기) 변호사를 내세웠다. 젊은 여성변호사들의 표를 노린 파격적 전략이다.

올해 서울변회 선거에서 격동에 가까운 변화가 시작된 것은 변호사들의 불안감 때문이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이제 ‘1년에 변호사 1000명 배출’은 옛날 얘기고 머지않아 ‘변호사 3000명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당장 내년 2월에 로스쿨 졸업생 2000명이 나온다. 법무부는 이 중 75%를 변호사 시험에 합격시키겠다고 발표했다. 41기 사법연수생 986명도 같은 시기에 수료한다. 합치면 약 2500명이다.올해 초 한 대형 로펌에 취업한 한 신입변호사(연수원 40기)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대형 로펌에 가는 것은 그나마 매우 잘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스쿨 졸업생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대형 로펌 신입변호사 연봉이 4000만원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앤장·태평양 같은 대형 로펌의 신입변호사 연봉은 1억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판검사 안 거친 ‘청변’ 표가 변수
이를 인식한 듯 선거에 나온 7명의 후보는 너나없이 ‘청년 변호사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다. ▶변호사 직역 확대 ▶사내 변호사의 권익 확대 ▶여성변호사 출산ㆍ육아 지원 등은 거의 모든 후보가 내세우고 있다. 로스쿨 시대에 대한 불안감을 겨냥한 공약도 쏟아졌다. 최정환 후보는 “연매출 5000억원 이상 500개 기업의 대표를 직접 만나 변호사 채용의 필요성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인 김갑배 변호사도 변호사의 일자리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있다. 1999년 김창국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선출된 이후 12년 만에 나온 민변 후보인 김 변호사는 ▶서울변회 의뢰 사건을 청년변호사에게 우선 수임 ▶서울시내 25개 구청에 법률센터를 설치해 수임 확대 ▶국회ㆍ정부 등에 변호사 채용 확대 등을 내세웠다.

‘청변’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이색 공약도 쏟아졌다. 윤상일 후보는 변호사 300명을 겸임교수로 채용하는 사이버법률대학을 설립해 수익금 전액을 청년변호사 지원기금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조용식 후보는 “성공보수를 떼어먹는 사례가 많은 만큼 서울변회에서 변호사 성공보수에 대한 에스크로제(결제대금예치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욱환 후보는 “변호사 의무 연수를 무료화하고 윤리교육을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최정환 후보는 “청년변호사들에게는 소장을 접수할 때마다 5000~2만원 정도 서울변회에 내는 ‘경유회비’(인지대 성격)를 받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선거에 나온 후보들은 법관ㆍ검사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정태원 후보는 친정인 검찰을 겨냥해 ‘상시적 검사 평가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는 “국민에게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올바른 법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법관뿐 아니라 검사들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며 “함량 미달인 판검사를 퇴출할 수 있는 상시평가제를 시행해 국민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배 변호사는 “당선되면 퇴직 판검사는 최종 근무 지역에서 일정 기간 수임을 할 수 없도록 해 전관예우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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