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대하고 현란하고 … 심심하진 않지만 감동은 부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3호 05면

오페라의 ‘메이드 인 차이나’가 한발 성큼 다가섰다. 26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 중국 국가대극원의 ‘투란도트’ 공연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못 말리는 자신감’이었다. 천안문 광장 주변의 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첨단의 모습으로 국가대극원을 지은 것처럼 그들이 만든 ‘투란도트’는 오페라를 가져다가 오페라가 아닌 새로운 장르를 만들려는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베이징 올림픽과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보았듯 일단은 사람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고 형형색색의 조형물과 화려한 의상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한국 국립오페라단- 중국 국가대극원 공동작업 오페라 ‘투란도트’

영화 ‘황후화’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 놓은 듯했다. 마치 공식을 대입해 문제를 풀어가듯 거침이 없었고 부품들을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 듯이 손발을 맞췄다. 지휘자 리신차오의 짧게 깎은 머리처럼 모든 것이 반듯했다. 무대는 언제나 좌우 대칭으로 균형이 잡혀 있었고 음악의 흐름도 굴곡 없이 이어졌다. 짧게 말하자면 감동은 없었지만 심심하지 않았고 재미는 있었지만 감칠맛은 아니었다고나 할까.

무대에 선 그 누구도 돋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흠 잡을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칼라프를 노래한 테너 워런 목은 수준급의 소리를 가졌지만 어떨 때는 벌어지는가 하면 때로는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발성이 귀에 거슬렸다. 3막의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못하고’에서는 호흡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불안하기도 했다. 류를 열연한 소프라노 박지현은 연기는 물론 노래에도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 물결이 일듯 출렁거렸다. 공주로 나온 소프라노 이화영은 노래와 연기 모두 무난하게 소화했지만 표독스럽고 매몰찬 모습이 사랑으로 무너지기까지를 보여주고 들려주지는 못했다. 티무르를 노래한 베이스 톈하오장이나 핑, 팡, 퐁을 연기한 류쑹후, 쩡야오, 왕페이는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대체로 잘 감당해냈다.

입맛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 그렇지 그들 나름 최선을 다한 무대였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했고 전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시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란도트 공주의 인간적인 내면을 살리려는 의도가 신선했다. 조상인 로링 공주가 침략자에게 유린당한 까닭에 모든 남성을 혐오하게 된 투란도트 공주의 무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로링 공주의 망령을 등장시켜 춤을 추게 하는 것도 그렇고 왕자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류의 희생에 충격 받은 공주가 채찍을 휘둘러 마음의 동요를 보여주는 것도 그럴듯한 설정이었다.

류가 자결하고 난 다음부터 푸치니가 완성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을 중국의 작곡가 하오웨이야에게 맡겨 완성한 것이야말로 해볼 만한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처음으로 완성에 나섰던 알파노처럼 푸치니에 충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베리오처럼 독창적인 것도 아니었다. 원작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중국의 민요 ‘모리화’를 써서 보다 중국적인 정서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그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체성이라면 그들이 오래전부터 너나 없이 답습해 왔던 특유의 틀에 박힌 관현악법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정도였고 그 이상을 기대하기엔 아직 때가 이른 듯싶었다.

모든 게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저만큼 많아야 하는지, 저렇게 크고 높아야 하는지, 눈이 부실 정도로 현란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노래도 마치 인민해방군의 군가처럼 아직도 선동하는 듯한 웅변조가 남아 있었다.

함께 출연한 우리 성악가들에게도 영향이 미치는 듯했다. 국가대극원과 국립오페라단의 공동 작업이라고 하는데 국립오페라단의 역할이 뭔지를 모르겠다. 출연한 몇몇 주역 가수가 국립오페라단 소속이라는 것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다. 그들은 저 정도를 가지고도 자신 있게 밀어붙이는데 우리에겐 무슨 대책이 있나 걱정이다. 다음에 국가대극원에 가져갈 국립오페라단의 야심작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도쿄의 신국립극장은 동참할 생각이 없는지, 그리고 중국과 일본은 극장에서 만드는데 우리만 오페라단과 극장이 따로 있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