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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원회와 데자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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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처음 보는데도 왠지 낯설지 않고 예전에 한번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을 때가 있다. 데자뷰 혹은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는 현상이다. 요즘 물가 때려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보면서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1970~80년대 얘기 하자는 게 아니다. 공정위도 수차례에 걸쳐 과거 70~80년대 물가 단속과 같이 가격을 직접 통제·관리하려는 게 아니고 본연의 임무인 경쟁 촉진을 통해 물가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직후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을 만들었다. 국 단위로 짜인 기존 조직 간의 벽을 허물어 시장감시국·카르텔조사국·소비자정책국이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독과점 지위 남용이나 담합, 소비자 문제 등 법 위반 행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꼭 10년 전인 2001년 초 김대중 정부 후반기였다. 공정위는 그해의 핵심업무로 특정 시장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내용의 ‘포괄적 시장개선대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시장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해서 ‘클린 마켓 프로젝트(CMP)’라는 별칭이 붙었다. ‘포괄적’이란 말답게 조사수단이 총동원됐다. 경쟁과 시장원리의 작동을 막는 담합과 독과점 지위 남용 등을 일제 점검해 종합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정위는 공언했다.

 그런데 CMP 대상 분야가 참으로 묘했다. 사교육, 정보통신, 의료·제약, 예식장·장례식장, 건설과 함께 신문·방송이 포함됐다. 공정위는 국민경제 비중이 크고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 중 법 위반 빈도가 높고 소비자 불만사항이 많은 곳을 선정했다고 했지만 뒷말이 무성했다. 당시는 권력과 큰 신문사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경쟁당국이 권력의 입맛에 따라 동원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당시 공정위는 CMP의 순수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아직도 공정위 안팎에선 CMP 하면 언론사 조사를 먼저 떠올리는 이가 많다.

 2001년과 2011년, 공정위가 조사 역량을 총동원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시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물가 안정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쟁당국이 사정당국처럼 혹은 물가당국처럼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동수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지난 30년간의 공정위를 ‘차가운 파수꾼’으로 표현했다. 그 대신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비자와 생산자 등 모든 경제주체가 상호 공존하며 상생하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따뜻한 균형추’가 되겠다고 했다. 그가 직접 만든 말이다. 물가와 함께 요즘 청와대가 중시하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따뜻함’을 너무 추구하다 공정위 정책이 경쟁정책의 본령인 경쟁 촉진보다 약자 보호로 쏠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한국 특유의 정책 수요 탓에 물가와 동반성장에 올인(다 걸기)하는 공정위가 평소 자랑스레 여기는 세계 경쟁당국 순위 6, 7위권을 올해에도 유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