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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날린 과징금·벌금 2조원 넘는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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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 기업들이 지난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규모가 4억 유로를 훨씬 넘어선다. 달러로 환산하면 4억6000만 달러가 넘는다. 이만큼의 외화를 벌어들이려면 2만 달러짜리 승용차 2만3000대를 수출해야 한다. 또 이만큼을 순이익으로 가져오려면 거의 50만 대를 수출해야만 가능한 금액이다.

 비단 유럽에서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국제카르텔로 제재받은 상위 10대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이 무려 4개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한 푼의 달러가 아쉬웠던 2009년만 해도 국내 굴지의 한 기업은 미국에서 4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 피눈물이 나는 일이다. 지금까지 국제카르텔로 인해 외국에서 부과받은 벌금이나 과징금의 액수는 무려 2조3000억원이 넘는다. 수출을 많이 한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어이없이 뒤로 새나가는 외화를 지켜야 할 판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아무래도 우리 기업의 영업 관행이나 기업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회합과 사업자단체 활동, 경조사 모임, 개인적 인맥과 연결된 동양적 기업문화와 영업 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기업들은 담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시장 곳곳에서 담합이 성행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카르텔로 적발된 경우를 열거해 보면 이러한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학생복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담합은 만연돼 있다. 가위 담합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무색하지 않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아니 샐까. 국내 유수 기업의 상당수가 국제카르텔로 단속되거나 현재 조사 중이라고 한다. 이미 반도체, LCD 패널, TV 브라운관, 항공운임, 라이신, 핵산조미료 등의 업종에서 제재받은 바 있다. 해외의 경쟁사업자들이나 당국이 우리 기업의 관행을 일찍부터 눈여겨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질수록 견제가 집중되면서 카르텔 관행은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담합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고 너그러웠다는 점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보다는 협동과 협조를 더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풍토에서는 담합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담합행위를 사업상 있을 수 있는 작은 실수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눈앞에 이익이 생길 양이면 쉽게 담합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카르텔의 사회적 폐해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중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한다.

  이제부터 카르텔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단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텔이 자국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면 자국법을 역외에 적용하는 게 국제적인 관례다. 국제카르텔로 단속되면 그 대가가 만만치 않다. 한번 걸리면 과징금이나 벌금 액수가 천문학적이다.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나라도 있다. 소비자나 피해자들에게 3배의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른 소송 대응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카르텔 공모에 관여한 당사자, 즉 개인은 형사처분을 받기도 한다. 한 나라에서 걸리면 다른 나라에서도 해당 기업을 주시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비즈니스에 따른 법률적 리스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미지 추락은 또 다른 문제다. 국내외적으로 담합 규제가 한층 강화되고 있는 마당에 마냥 관행과 문화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도 담합 행위에 대해 더 이상 관대함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담합에 관한 한 이제는 좀 더 보수적이고 엄격한 입장에서 규율될 필요가 있다.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