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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빚 109조, 수공 3조 나랏빚에 안 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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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말 많고 탈 많았던 국가 재정통계가 확 바뀐다. 이에 따라 10년 넘게 지루하게 이어졌던 국가부채 논쟁도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2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조세연구원 주관으로 공청회를 열어 재정통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뒤늦게지만 국제기준을 받아들여 정부의 범위를 더 넓게 잡았다. 사실상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을 정부 범위에 대거 집어넣었다. 내년부터 비영리 공공기관 145개와 민간기금 20개도 ‘정부’가 된다. 이들이 쓰는 돈도 재정지출에 속하게 되며, 이들이 짊어진 빚도 국가부채에 새로 포함된다는 의미다.

 이는 본지가 2006년 4월 ‘대한민국 정부는 큰 정부? 작은 정부?’ 탐사기획에서 지적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본지는 정부가 재정통계로 잡고 있는 중앙·지방정부에 산하 공공기관 중에 316개를 추가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재정규모와 나랏빚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작은 정부’라고 주장했던 노무현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이번에 원가보상률을 잣대로 정부에 포함시킬 공공기관을 골랐다. 회계기준이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바뀜에 따라 미지급금과 선수금·예수금 등도 새로 부채에 들어온다.

 그러나 빚 많은 LH·수자원공사를 포함해 공기업 21개는 모두 원가보상률이 50%를 넘는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벗어났다. LH는 보금자리 주택을 짓느라, 수자원공사는 4대 강 살리기 사업 탓에 재정건전성이 나빠졌다. 2009년 말 LH의 부채 총액은 109조원, 수공은 3조원이다. 자산은 각각 130조원, 13조원으로 더 많다지만 국책사업을 하느라 빚이 늘어난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기관을 “크게 밑지고 장사하는 비영리 공공기관은 아니다”라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유찬 홍익대 교수(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는 “공기업 부채의 대부분이 빠졌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실상 대부분의 공기업은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며 “대표적인 게 LH이며 여기에 쌓여 있는 막대한 빚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통계로서 현실 반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통계에는 있었지만 이번에 빠지는 것도 있다. 정부 안의 각종 기금과 회계 간의 내부거래는 국제기준에 따라 모두 제외된다. 연금이 보유한 국채도 국가부채에서 빠진다. 국채는 정부 빚이 분명하지만 결국 정부의 일부인 연금이 들고 있으니 이중으로 계산하지 말자는 취지다. 국민연금의 국채 보유분은 100조원 수준이다.

 국가부채 때마다 논란이 있었지만 끝내 포함시키지 않은 항목도 여럿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이 나중에 내줘야 하는 돈을 준비하기 위한 충당부채는 빠졌다. 보증채무도, 통안증권 등 한국은행의 부채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런 항목을 빼는 게 국제기준에 맞고, 남들이 안 하는데 굳이 한국만 중뿔나게 나서 국가부채를 부풀릴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 공기업들은 정부 사업을 대행하거나 가격통제를 받는 등 특수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 기업의 부채를 모두 국가부채로 잡는 것도 합당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뭘 넣고 뭘 빼는가에 초점을 맞출 경우 소모적인 논란만 이어질 것”이라며 “그보다는 공기업 부채 중 어떤 부분이 정부와 관련된 것인지 명확히 하는 구분 회계를 도입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경호·조민근 기자

◆원가보상률=판매액을 생산원가로 나눈 값. 원가보상률이 낮다는 것은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판매했다는 의미로 그만큼 공공성이 강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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