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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말하는 아덴만 작전 영웅 석해균 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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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석해균(58)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3년 전 싱가포르 여행 중 호텔에서 찍은 사진. 석 선장은 배 타는 시간이 많아 가족들과 함께 찍은 변변한 사진 한 장 없다. [석해균 선장 가족 제공]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매일 기도했다. “아버지, 잘 하셔야 돼요. 선원과 배를 목숨처럼 아끼시는 아버지시잖아요….”

 이런 아들의 염원이 아버지에게 전달됐나 보다. 사선을 넘나들며 해적을 속인 아버지 덕에 선원들이 모두 살았다. 배도 안전하게 지켰다.

석해균 선장 둘째 아들 현수씨. [부산=송봉근 기자]

“아버지는 항상 공부하며 배를 목숨처럼 아끼셨습니다.” 22일 오후 8시쯤 부산시 장전동 석해균(58) 선장의 집에서 만난 둘째 아들 현수(31·대학 휴학 중)씨는 아버지의 부상을 염려하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아들은 처음에 21명 선원 모두가 구조됐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곧 석 선장이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 마도로스’. 해운업계에서는 석 선장을 이렇게 불렀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석 선장은 고향에서 초·중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마쳤다. 가난 때문에 대학에 갈 형편이 못 됐다. 해기사(海技士) 양성소를 거쳐 3등 항해사가 됐다. 당시에는 선원이 귀할 때여서 배를 타면 육상 근무의 두 배쯤 되는 월급을 받았다.

 “아버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다를 택하셨습니다. 바다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셨죠.”

 이렇게 배를 탄 청년 석해균은 2등 항해사, 1등 항해사를 거쳐 10년 전에 마침내 선장이 됐다. 20대 후반에 배를 타기 시작했으니 그의 승선 경력은 30년이 넘는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는 뱃사람이었다. 현수씨는 “아버지는 항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다음 항해를 위해 공부하셨다”고 말했다. 석 선장은 주로 정보기술(IT) 책과 씨름했다. 간혹 ‘요즘 선박용 전기통신장비가 얼마나 빨리 발전하는지’라는 푸념도 했다는 게 현수씨의 설명이다.

 석 선장은 이렇게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8년 전 지금의 3층 상가건물을 구입했다. 형편은 나아졌다. 부인과 두 아들은 “이제 배를 그만 타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석 선장은 듣지 않았다. 휴식이 끝나면 그는 다시 짐을 챙겨 바다로 향했다. 석 선장은 가족과 오순도순 사는 편안함보다 해상운송을 개척하는 도전의 삶을 추구했다. 이러니 가족들이 모여 찍은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을 정도다.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 중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이 오만 살랄라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안정을 취하고 있다. [오만=연합뉴스]

 회사에서도 석 선장은 ‘퍼펙트 캡틴’이었다.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삼호해운 관계자는 “석 선장은 운항 스케줄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화물을 완벽하게 운반해 클레임을 일으키지 않은 모범 선장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항해 지시를 받으면 인터넷을 통해 항로를 철저히 연구했다. 배와 화물의 상태를 챙기기 위해 출항 전에는 며칠이고 배에 올라 꼼꼼히 점검하는 걸로 정평이 났다.

 동료 선원들은 석 선장을 따랐다. 석 선장은 선원들의 명단을 미리 받아 각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일일이 통화하면서 팀워크를 다지는 섬김의 지도자였다. 한 동료는 “석 선장은 워낙 책임감이 강하고 솔선수범했기 때문에 그와 함께 배를 타는 선원들은 석 선장을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석 선장은 항해 중이라도 틈틈이 두 아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며 대화하는 걸 잊지 않았다. “지나온 항구와 다음에 기항할 나라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면서 어머니와 우리 형제가 걱정하지 않도록 늘 배려해 주셨어요.”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쏠리는 관심이 부담스럽다. 현수씨는 “아버지가 총상을 입고 오만 살랄라의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탈진하셨다가 이제 겨우 기력을 회복 중”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인터넷으로 현지 뉴스를 찾아 어머니에게 일일이 전달해 준다고 했다. 현수씨는 “아버지와 선원들이 모두 무사할 수 있도록 애써 준 해군 장병 등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다를 보며 외쳤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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