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성폭행범 잡은 ‘DNA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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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해 9월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빌라에 사는 여성이 “낯선 남자가 집 안을 훔쳐본다”며 112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송파경찰서는 인근에서 배회 중이던 유모(36)씨를 검거했다.

그는 이 여성이 혼자 사는 반지하 빌라의 창문을 강제로 열어 방 안을 훔쳐본 혐의였다. 경찰 조사에서 유씨는 혐의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그런데 담당 형사인 노종찬 경사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유씨는 조사 내내 태도가 부자연스러웠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다른 피의자와 비교해도 그 정도가 심했다. 게다가 유씨는 2005년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수를 한 전과도 있었다. 노 경사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유씨의 동의를 얻어 그의 구강상피세포를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다.

 이후 송파서는 유씨의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동부지검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유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유씨가 피해자와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유씨의 일이 거의 잊혀진 올 1월 5일, 송파서는 국과수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유씨의 구강상피세포를 분석한 결과 6년 전 강동구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범인과 DNA가 일치했다는 것.

2005년 3월 강동구 성내동에선 신원불명의 남성이 30대 여성 A씨의 집에 침입해 주방에 있던 식칼로 피해자를 협박한 뒤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은 범인을 특정조차 하지 못했다. 자칫 미제로 남을 뻔했던 사건의 범인이 6년 만에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유씨 검거 작전에 나선 송파서는 지난 17일 강동구 성내동 유씨 부모의 주거지 인근에서 그를 검거했다.

유씨는 처음엔 성폭행 사실을 부인했지만, 경찰이 내민 DNA 결과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19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유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작은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는 담당 형사의 성실함이 범인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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