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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AI 소독약 공중살포, 괜찮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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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AI)도 야생 철새→오리→닭으로 이어지는 AI의 일반적인 감염루트를 밟고 있다. 먼저 야생 철새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얼마 뒤 오리에서 나왔다. 현재는 오리, 특히 식용(육용)오리에서 다발하고 있다.

 오리가 AI의 주류를 이루면 조기 발견과 방역이 힘들어진다. 닭은 AI에 감염되면 2∼3일 내에 75%가 폐사해 감염 사실을 금세 알아챌 수 있는 데 반해 오리는 사료 섭취량·산란율이 약간 떨어지는 정도여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10일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서울대 수의대 채찬희 교수).

 사실 AI는 예방과 방역이 구제역보다 더 까다로운 질병이다. 소·돼지는 이동제한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날아다니는 야생 철새에 족쇄를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이달 중순 전남 등 일부 지역에선 헬리콥터나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소독약 살포작업이 실시됐다. 전남의 경우 순천만·영산강·영암호·고흥만 등 철새도래지 8곳 주변의 농경지에 소독약을 광범위하게 살포했다. 이번 소독약 공중 살포작업의 목표 투하량은 물경 212만L다. 산불 진화를 위해 헬리콥터가 한 번 충돌할 때 3000L의 물을 뿌리고 돌아오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AI 소독약의 공중 살포 작전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네 가지를 떠올렸다. 첫째, 얼마나 다급했으면? 둘째, 소독 효과는? 셋째, 겨울 배추엔? 넷째, 생태계엔?

 AI 때문에 벌써 수백만 마리의 닭·오리를 매몰 처분해야 하는 현실에서 손놓고 있기 힘든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소독 효과는 따져봐야 한다. 이번에 살포한 소독약이 구연산과 염소계열이란 얘기를 전해 들었다. 구연산의 경우 5도 이하에선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요즘 같은 강추위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염소계 소독약도 15∼20도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이보다 온도가 높거나 낮으면 소독력이 저하된다. 또 소독약이 저수지 등 물에 들어가면 희석돼 소독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겨울 배추 등 채소에 소독제가 묻을 수 있다. 소독제가 다량 잔류한 식품을 원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사용된 소독제들이 독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러나 독성이 전혀 없다면 소독약이 아니다. 식품안전당국이 항공 방제가 실시된 지역 주변에서 생산되는 농작물 소독약 검출량을 검사해 위해성 평가를 해볼 필요는 있다.

 생태계엔 이미 진동을 일으켰다. 헬리콥터의 소음은 철새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도 봄철에 꿀벌 등 곤충에 영향을 미칠 소지는 있다고 우려했다.

 소독약의 공중 살포와 같은 방역작업은 농작물·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득실을 잘 따진 뒤 실시해야 한다. ‘발등의 불’에 물 대신 산소를 끼얹을 수도 있어서다. 특히 정부·지자체·전문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손익계산을 철저히 한 뒤 실행에 나서야 후환이 없다. 이번 초유의 항공 방제 이전에 지자체·산림청·검역원·식약청·환경부 등이 의견 교환을 충분히 나눈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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