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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 시론

국사 교육은 역사의 준엄한 명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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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충남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국사를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는 중앙일보의 노력에 적극 찬동한다. 모든 나라는 자국사(自國史)를 필수과목으로 하고 있으며,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국사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 암기 과목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며, 이를 틈타 전교조 교사들은 왜곡된 역사관을 주입시켜왔다. 역사는 존엄과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경멸과 청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현대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발길을 가로막고 있다.

 신채호는 “역사를 떠나 애국심을 구하는 것은 눈을 감고 앞을 보려는 것이며, 다리를 자르고 달리고자 하는 것이다. 국민의 애국심을 환기시키려거든 완전한 역사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역사는 국가의 기억”이라고 했다. 기억상실증에 빠진 사람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없듯이 역사 의식이 없는 국민은 보람찬 시대를 열 수 없다. 역사를 모른다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 출범 당시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었으며, 그동안 어떤 도전들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알지 못한다면,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로 나라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없다. 세계는 한국의 발전을 놀라움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우리는 오히려 나라에 대해 불만이 많은 편이다. 워싱턴 소재 퓨(Pew)리서치센터가 2007년 4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은 팔레스타인, 레바논에 이어 셋째로 국가불만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나면 나가 싸우겠다고 하는 젊은이들의 비율도 이웃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고, 다시 태어나면 한국을 택하겠다는 비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

 오늘의 한국은 조상과 선배 세대들의 피와 눈물과 땀의 결정체다. 지난 100년간 우리 역사는 식민지배, 건국, 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 영욕이 함께한 역사였다. 특히 지난 60여 년간 우리는 ‘안보의 기적’ ‘산업화의 기적’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해 개도국의 성공모델이 되고 있다. 선배 세대들의 고귀한 희생과 노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추구한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역사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은 식민지배를 통해 한국 발전에 기여했다 하고, 중국은 6·25전쟁 당시 우리와 맞서 싸웠으며 지금도 정의로운 전쟁에 참전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조적으로 미국은 그동안 우리의 안보와 번영의 동반자가 되어왔다. 역사를 모르는 세대가 중국과 일본의 예상되는 도전에 과연 대응할 수 있을 것이며, 한·미 동맹이 왜 소중하며 굳건히 지켜야 할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공(公)교육은 현대 국가의 주요 기능이며, 역사 교육은 공교육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공교육의 목표는 ‘성숙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데 두고 있으며, 이러한 목적에서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미국사가 필수로 돼 있다. 이민자가 시민권 획득을 위한 인터뷰에서 미국사가 주요 내용이 될 만큼 역사는 미국 국민의 필수교양이다.

우리 공교육에서 국사교육의 위상은 무엇인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없는 공교육은 ‘죽은 교육’이며 사교육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국사는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재지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공교육 정상화의 지름길이다. 필수과목으로 환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재미있고 알찬 국사교육이 되도록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획기적인 향상이 수반돼야 한다. 현대사 교재 개발과 담당교사 재교육을 위한 거국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기성세대의 역사관 확립을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국사평가 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공무원 시험, 사법시험, 교사자격 시험 등 정부 주관 시험의 응시자격으로 국사 평가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 산하 각종 교육과정에서 현대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김충남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