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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재스민 혁명’ 벌써 빛바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의 23년 독재정권이 무너진 튀니지 과도정부에 구정권 인사가 대거 포함돼 ‘재스민 혁명’의 빛이 바래고 있다.

 이런 ‘반쪽짜리 민주화’에 반발하는 시위로 튀니지엔 또다시 혼란이 시작됐다고 AFP통신 등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총 23명으로 구성된 과도정부 내각을 발표했다. 나치브 체비 등 야당지도자 3명이 포함됐지만 총리를 비롯해 국방·내무·재무·외무장관 등 요직을 구정권 인사들이 그대로 차지했다.

 대통령만 푸아드 메바자 임시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 구정권의 핵심인사들이 그대로 유임된 것이다. 집권당인 입헌민주연합은 1956년 독립 이래 한 번도 정권을 내놓은 적이 없다. 간누치 총리는 언론 자유 보장, 정보국 폐지, 정치범 석방 등을 발표하는 등 민심 수습에 나섰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반정부 블로거 슬림 아마무와 인기 영화감독 머피다 트라틀리를 각각 아동청소년부 장관과 문화장관에 내정했다. 또한 늦어도 6개월 내에 대선·총선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과도정부 내각을 바라보는 민심은 “속았다”는 분노로 변하고 있다. 과도정부가 구정권 인사들을 새 내각에서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공약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이날 수도 튀니스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구정권 세력을 새 정부에서 축출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튀니지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다.

 이번 내각 발표에 대해 프랑스에 망명 중인 야권인사 몬세프 마르주키는 “과도정부가 겉으로는 통합을 표방했지만 결국 독재정권 인사들을 대거 끌어들였다”며 새 정부를 ‘가장 무도회’에 비유했다. 구세력을 뿌리뽑지 못하고 대통령만 쫓아낸 부분적 혁명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대규모 시위가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다. 튀니스 시내에는 여전히 탱크들이 배치돼 있고 간혹 총성도 들리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한편 튀니지 내무부는 최근 한 달간 지속된 반정부 시위로 78명이 숨지고, 30억 디나르(약 2조3000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발표했다.

정현목 기자,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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