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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알리 야반도주 … 노점상 분신에 튀니지 23년 독재 붕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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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6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시내에서 한 남자가 건물 벽에 붙은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사진을 뜯어내고 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전날 사우디아라비아로 도주했다. [튀니스 AP=연합뉴스]

23년간 집권해온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Zine El-Abidine Ben Ali·74) 튀니지 대통령이 피플 파워에 밀려 14일 밤(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로 야반도주했다. 약 5000명의 시위대가 수도 튀니스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지 수시간 만이었다. 뉴욕 타임스(NYT) 등 서방 언론들은 이를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른다. 재스민은 튀니지의 국화다.

 벤 알리 대통령의 탈출 경위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군부 지도자 라시드 암마르 장군이 그에게 출국을 종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벤 알리 대통령은 다음 날 새벽 사우디의 지다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프랑스 망명을 시도했지만 프랑스 측이 허용하지 않자 사우디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정부는 “튀니지 안정을 위해 벤 알리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의 출국 직후 모하메드 간누치(69)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헌법위원회는 15일 푸아드 메바자(77) 국회의장을 헌법이 정한 권한대행이라고 발표했다.

메바자 의장은 이날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24시간 만에 국가 지도자가 두 번 바뀐 셈이다. 헌법위원회는 45일 이후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정권에 공백이 생기자 수도 튀니스 도심에선 폭도들에 의한 약탈이 속출하고 있다. 교도소에서도 방화·폭동 사태가 일어나 40여 명이 숨졌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2월 28일 분신 자살을 기도한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26)가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부아지지가 지난 4일 숨지자 경제난에 실망한 시위가 확산되며 벤 알리 대통령이 물러났다. [튀니스 AP=연합뉴스]

 튀니지 경찰은 최근 한 달간의 시위에서 23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튀니지의 사회단체는 60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벤 알리 대통령이 시위 진압을 위해 군을 동원하려 했지만 군부가 협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NYT는 튀니지군은 규모가 작아 정권 장악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벤 알리의 몰락은 지난달 한 노점상의 분신에서 비롯됐다. 26세의 무함마드 부아지지는 지난달 17일 튀니지 남동부 시디 부지드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단속반이 팔고 있던 과일을 압수해 관청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지난 4일 숨졌다.

 부아지지가 분신하자 국민들을 그를 ‘순교자’로 부르며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가 대학 졸업자라는 사실이 시위대를 더욱 자극했다. 대졸자도 취업을 못해 노점상을 해야 하는 현실이 부각된 것이었다. 실업난과 물가 인상, 빈부 격차가 원인이었지만 위키리크스가 벤 알리 대통령 일가의 부정축재 사실을 담은 미국 외교전문을 공개한 것도 한몫했다.

인구 1000만 명, 국민 연간 평균 소득 3700달러(약 400만원)인 튀니지에서는 한 해 약 8만 명의 대졸자가 배출된다. 벤 알리 대통령이 국가 정책으로 대학을 육성한 탓이다. 그러나 경제 발전이 교육 확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했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 수준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며 결국 대통령 퇴진으로 이어졌다.

 주 튀니지 한국대사관 측은 15일 “아직 한국 교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알려왔다. 외교부는 16일 “상황이 악화되면 교민들을 전세기로 비상 탈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벤 알리=1987년 종신 대통령이던 전임 하비브 부르기바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집권했다. 당시 총리였던 벤 알리는 임시 대통령이 됐고 그 뒤 2009년까지 5차례의 대선에서 승리해 23년간 집권했다. 네 딸은 모두 재벌 가문과 결혼했다. 그는 통행금지 등 강경책과 지탄을 받던 내무부 장관 경질 등 유화책을 섞어가며 시위 확산을 막으려 했으나 정치·경제를 장악한 대통령 일가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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