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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탈당 사태 재발, 국정 표류 피하기 힘들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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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07면

#2006년 3월 14일
5·31 지방선거를 앞둔 2006년 3월 집권당의 ‘반란’은 시작됐다. 이해찬 국무총리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이 총리가 3·1절에 부산 상공인들과 골프를 친 게 문제였다. 야당의 사퇴 요구에 끄떡하지 않던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2시간여에 걸친 독대 후 결국 맘을 바꾼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기억하는 그날의 장면은 이렇다.
“오찬상을 물리고도 30분 이상 더 얘기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 총리 문제를 풀지 않으면 선거가 어렵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반대했다. ‘전 저대로 판단하겠다’고 하고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쯤 왔을 때 차 안에서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당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며 이런 내용을 당에서 밝히라고 했다.”

집권 4년차마다 반복되는 여당의 반란

#2006년 8월 2일
논문 표절의혹과 연구비 중복 수령 논란에 시달리던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사표를 냈다. 임명 13일 만이었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그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다듬었다.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야당과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했을 때 “난 떳떳하다”며 버틴 것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그러던 그가 결국 자진 사퇴의 길을 택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집권당(열린우리당)의 압박 때문이었다. 당 의장(김근태)이 선봉에 섰다.

김병준(국민대 교수) 전 부총리는 “내가 안 나가면 당·청 갈등이 첨예해질 수밖에 없겠더라. 대통령도 불쾌해했지만 당의 통제력·영향력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01년 5월 23일
“미천한 저를 발탁해 주신 것은 개인과 가문의 영광이며 성은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 한 장의 메모가 DJ(김대중 대통령) 집권 4년차 민주당의 반란을 촉발했다. 안동수 법무부 장관이 작성했다는 메모가 공개되면서 사퇴여론이 빗발쳤다. 정장선·정범구·이종걸·김성호 의원 등 소장파들은 “인사정책이 공적 시스템에 의하지 않고 비공식 라인에 의존하고 있다. 인사에 개입한 사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비선라인의 배후로 DJ의 ‘분신’이자 최측근인 권노갑 고문이 지목됐다. 안 장관은 임명 43시간 만에 자진사퇴했지만 소장파는 인적 쇄신을 요구하며 정풍운동으로 몰아갔다. 그 전해인 2000년 말 정동영 최고위원의 ‘2선 후퇴’ 요구로 당직에서 물러났던 권 고문이 마포에 개인 사무실을 열며 활동을 재개하던 때였다. 충돌하던 당·청 관계는 권 고문의 활동 중단과 사무실 폐쇄로 결말이 났다.

#2011년 1월 12일
이명박(MB) 대통령의 집권 4년차인 2011년 벽두, 여권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사퇴로 충돌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사퇴 압박을 받던 정 후보자는 지명 12일 만에 물러났다. 집권 4년차, 대통령과 집권당의 갈등은 패턴화돼 되풀이되고 있다. 5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사건들은 미묘하게 오버랩된다. 5년 전 이해찬 총리, 김병준 부총리를 지금의 정동기 후보자로, 당시의 정동영·김근태 의장을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로 치환해 보면 똑 떨어지는 닮은꼴이다. 당시 이병완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인사권이 흔들리는 것은 레임덕(권력누수) 차원이 아니라 국정 표류를 초래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반발했다. 정 후보자의 사퇴 요구에 대해 “집권 여당이 보여준 절차와 방식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홍상표 홍보수석)고 한 청와대의 반응과 닮은꼴이다.

임기 말 당·청 갈등은 왜 반복되는 걸까. 집권 4년차마다 되풀이되는 집권당의 반란은 한국 대통령의 숙명인가.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인기 없는 대통령과 분리하려는 차별화 시도는 미국에서도 있지만 대통령의 탈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미국 의원들은 임기 초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의원들은 임기 초엔 대통령에게 100% 복종하다 임기 말 대통령의 인기가 없어지면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불행한 대통령사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진·원로 정치인들은 “양측이 서로 불만이 있다. 당은 여론이 나쁘니까 (사퇴 요구) 입장을 정리한 것이고, 청와대는 정권 초였다면 안 그랬을 텐데 선거 앞두고 사심이 있어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된다”(박관용 전 국회의장)거나 “여론이 안 좋아졌을 때 여당이 이런 걸 스스로 질타하지 않고 넘어가면 반드시 (선거에서) 망한다는 나쁜 경험이 있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정대철 민주당 고문)고 분석했다.

재집권 전략과 구상을 놓고 당과 청와대가 부닥칠 때 충돌의 파고는 높아진다. 대통령 탈당 요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두 임기 말에 당을 떠났다. 또 ‘미래권력’ 형성을 둘러싼 여권 내 각 세력이 경쟁하면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런 경우 파워게임 양상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1·10 반란을 둘러싸고 안상수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간 사전교감설이 확산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청와대 인사라인을 문제 삼아 교체를 촉구한 걸 놓고 여권 내 권력투쟁의 징후가 엿보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인사수석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임태희 비서실장을 겨냥한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과거 정권에서도 그랬다. 김병준 전 부총리는 자신의 낙마를 노 대통령의 재집권 구상을 허물어뜨리고 당 주도로 정권 재창출 플랜을 마련하기 위한 당권파의 반란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김병준 교육부총리, 문재인 법무부 장관 기용을 마치 노 대통령이 자파 세력을 후계자로 앉히려 할 것으로 보는 세력들이 있었다. 이런 포비아(공포)와 대통령이 뭔가 시도할 거라는 의심이 나를 밀어내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노갑 고문 2선 퇴진 요구 역시 ‘정풍운동’이란 포장의 이면엔 권력투쟁의 그림자가 배있다. ‘이인제 대세론’을 확산시키려 했다는 점이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 재정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이런 식으로 하다간 대통령 탈당사태가 또 일어난다. 대통령이 당 총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여권의 최고 지도자인 만큼 여의도 정치엔 관심 없다고 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최고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에서 교훈을 얻을 것을 제안한다. 장 교수는 “미국 대통령이 가장 많이 만나는 게 여당 지도부와 핵심 인사들이다. 부부 동반으로 초대하고 백악관에 재워주기도 한다. 의원들은 지역사업을 돕거나 예산을 지원해준다. 백악관과 여당의 관계를 주고받는 비즈니스 관계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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