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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시선 … 따뜻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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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07면

황톳길(Yellow Road)(1989), 캔버스에 유채, 46*46㎝

아버지와 큰딸의 관계란 각별하다. 첫딸로서, 첫 남자로서 도타운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1917~90)과 그의 장녀 장경수(66·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씨도 그랬다. 서울대 미대 교수를 그만둔 아버지가 어느 날 그림만 그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문명으로 표기되는 서울이 싫다”며 1963년 경기도 덕소 한강변으로 휘적휘적 들어가 화실을 짓고 홀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5남매와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당시엔 이해하지 못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화를 냈죠. 그런데 오빠와 덕소를 가보니 그 궁핍함이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어요. ‘이렇게까지 해서 그림을 그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장욱진 20주기 회고전’, 1월 14일~2월 27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문의 02-2287-3500

당시 힘들게 덕소를 오가던 딸에게 아버지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너는 뭐냐, 나는 뭐냐”고 화두처럼 물었고, 술이 깨면 “내가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읊조렸다. “아버지에게 그림은 일이었고 술은 휴식이었어요. 한번 드시기 시작하면 곡기도 거의 끊고 쓰러질 때까지 드시곤 하셨죠. 앰뷸런스를 부른 적도 부지기수였어요.”

'밤과 노인(Night and Old Man)'(1990), 캔버스에 유채, 40.9*31.8㎝'반월(The Half Moon)'(1988), 캔버스에 유채, 45.7*35.5㎝

엄청난 주량 때문에 기인으로 더 알려진 장 화백이었지만, 큰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림과 생활이 일치하는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써버릴” 뿐, 돈도 못 벌고 처가에서 인정도 못 받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큰딸은 “나라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장 화백의 부인 이순경 여사는 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큰딸이다.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병도 박사의 손자다. 저명한 학자 집안인 처가에 세배 가지 않는 이유를 묻자 장 화백은 “거긴 다 박사래, 사람은 나밖에 없어”라는 촌철살인의 유머를 남겼다고 경수씨는 회고했다).

그런 큰딸은 그래서 아버지에겐 “간이 맞는” 자식이었다. 장녀 결혼식 때 예쁘게 보이겠다고 틀니를 한 것도, 첫 출산 때 사위 대신 딸의 곁을 지킨 것도 아버지였다. “우리 딸이 나는 인정 안 해도 내 그림은 인정해” “경수가 다녀가면 머리가 쾌해”라고 주위에 얘기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늘 부축해 드리던 손이 허전해 딸은 1년 가까이 걸핏하면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장 화백의 20주기를 기념하는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덕소·명륜동·수안보·구성(신갈) 등 그의 주요 시기별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다. 유화 60여 점과 먹그림 10여 점 등 70여 점이 나왔다.

게다가 이번 전시에 맞춰 영문판 화집도 나왔다. 출판사는 지난해 박수근 영문화집을 펴냈던 마로니에 북스. 도판 101점과 정영목 서울대 교수, 오광수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고(故) 김원룡ㆍ최순우 선생 등의 평론 등이 실렸다.
전시장 지하는 생전의 작업실이었던 경기도 용인 아틀리에에서 장 화백이 사용하던 화구 및 가구를 가져와 그의 작업실처럼 꾸몄다. 21일 오후 2시에는 장경수씨의 특별 강연도 열린다. 관람료 성인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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