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묘하다” 했던 기름값, 문제는 세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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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3원 대 1817.31원’.

 2008년 7월 국제원유 가격이 138달러로 정점을 찍었을 때와 현재(1월 첫째 주)의 휘발유 가격이다. 정부가 눈에 불을 켜고 기름값을 잡겠다고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는 14일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석유제품 가격결정구조를 논의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는 15일부터 전국 고속도로 주유소의 기름값을 L당 20원씩 내린다고 밝혔다. 그럴 경우 서울시내보다 L당 70원 이상 싸진다는 게 도로공사의 설명이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발 빠른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당장 불똥이 튄 정유업계는 울상이다. 내부적으론 가격 인하를 결정했지만 속으론 “내릴 여력이 없다”는 거다. 2008년 초부터 오르던 기름값은 그해 7월 정점을 찍었다. 이후 계속 내리던 기름값은 최근 들어 반등해 1월 첫째 주 기준으로 1817.31원이다. 2008년(1907.3원)과 비교하면 4.7%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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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들이 직접 휘발유를 구입하는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공급받는 기름값은 같고 판매가만 주유소에서 매기기 때문에 완전경쟁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임대료·인건비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거의 마진이 없다”(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고 말한다. 실제 2008년 7월 휘발유 판매가격에서 정유소 공급가격을 뺀 마진과 유통비용은 L당 127.59원이었다. 현재는 83.91원으로 떨어졌다. 전국 주유소의 기름값을 공개하는 등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격차가 줄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이다.

 정유업계는 “한국처럼 기름값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나라도 없는데 기름값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매번 정유사만 몰아붙이는 건 횡포”(정유사 관계자)라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2008년 7월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38.90달러였다. 지금은 90.91달러다. 이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시작된 부분이다. 당시 환율을 감안해 원화로 환산하면 원유 가격은 L당 871.64원이고, 지금은 639.6원이다. 당시 정유사는 주유소에 L당 1779.71원에 휘발유를 공급했다. 지금은 1733.4원에 공급한다. 각각 908.07원과 1093.8원 차이가 난다. 요즘이 20.4%를 더 받는 셈이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는 5.9%(2008년 7월 111.2→2010년 12월 117.8) 올랐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폭리’ 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러나 정유업계는 “수입 관세가 올랐고, 유류세 인하 조치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문제는 세금이란 얘기다.

 2008년 7월 1%(8.4원/L)였던 수입 관세는 현재 3%(19.3원/L)가 부과된다. 유류세가 전체 기름값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났다. 2008년 7월 전체 휘발유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일부 부가가치세 제외)은 38.6%였다. 당시 고유가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기름값의 약 30%를 차지하는 교통세와 주행세를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9년 1월 1일 깎아 줬던 교통·주행세를 원위치했다. 현재는 L당 820.48원이 부과된다. 이를 포함해 휘발유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5.1%다. 여기에 원유와 유통비용에 따로 붙는 부가가치세를 더하면 50% 가까이 된다. “기름값의 반이 세금이다. 세금을 내리는 게 가격 인하 효과가 가장 크다”(석유협회 관계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권호·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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