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기초과학 장학금 없어진 이유 궁금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윤재웅
동국대 교수·국어교육학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이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국가들은 모든 분야에서 선도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지 않는 한 남의 꽁지를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세계시장의 현실이다. 애플사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웅변하지 않는가. 퍼스트 무버의 제1 조건은 학문이다. 특히 문학·사학·철학과 같은 인문학과 수학·물리학·화학과 같은 기초과학의 뿌리가 그 생명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개인의 독창성이 탄생하며, 개별 독창성들이 연대해 집단지성으로서의 협창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이 국부의 진정한 기초이고 선도적 역량의 뼈대다.

 우리나라의 기초과학과 인문학의 고사 위기를 타개하고자 서울시에서 장학정책을 도입한 게 6년째다. 일자리에 대한 부담 없이 학문에만 전념하도록 배려한 대표적인 미래형 정책이다. 서울 소재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등록금 명목으로 학기당 250만~30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연간 600 명 정도 혜택을 본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 다니는 H군은 석사과정을 마칠 무렵 큰 고민에 빠졌다. 화학 분야의 박사과정 공부를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등록금 걱정 때문에 학자의 길을 포기하려 했다. 다행히 ‘하이서울장학금 대학원분야 과학장학생’에 지원해 등록금 걱정을 덜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곧이어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논문을 수록하는 쾌거를 올리고 특별 격려금까지 받게 되는 H군. 환상적인 시나리오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H군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사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비단 H군만이겠는가. 공적인 도움 없이 이루어지기 힘든 순수 학문 영역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꿈과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찌 이들 개개인만이 좋으랴. 서울시민들은 미래 한국의 선도적 역량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키우는 데 공공의 선업을 쌓음으로써 제도의 참여자가 된다.

 그런데 이 장학제도가 느닷없이 사라졌다. 서울시의회에서 2011년 예산이 전액 삭감된 탓이다. 서울시에서 그 필요성을 누차 보고했다고는 하나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무언가 부족했을 것이다. 서울시 의원들이 그렇게 앞뒤 가림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산의 유효성과 적절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투자로 더욱 크게 꽃 피어날 국가 경쟁력을 누구보다 가슴 깊이 헤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기초 학문 박사를 만들어내는 일은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 대학과 지역사회와 국가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많은 인재들의 안타까운 한숨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시인 서정주는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시 ‘행진곡’에서 ‘목아지여/목아지여/목아지여/목아지여’라며 식민지 지배하의 민족적 비애와 울분을 토로했다. 지금 장학생 지원에 부푼 꿈을 안고 있던 미래의 수많은 동량들의 심정이 그러할 것이다.

윤재웅 동국대 교수·국어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