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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부 4대 권부 인맥 대연구 -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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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힘은 권력기관에서 나온다. 따라서 정권이 교체되면 권력기관의 핵심부는 물갈이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이 바로 정권교체 이후 나타나는 권력이동 현상이다. 쉽게 말해 권력이동이란 권력기관에 내 사람을 심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영남 인맥이 오랫동안 득세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영남정권의 장기집권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지난해 2월 DJ정부 출범 이후 몇몇 장관급 인사들은 취임 일성으로 그동안 잘못됐던 인사원칙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권력기관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그 이름과 사람은 바뀔지언정 존재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
어느 정권하에서건 대체로 4대 권력기관이라 하면 검찰·경찰·국세청, 그리고 국정원(옛 안기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DJ정부 출범 이후 이들 4대 권력기관의 인맥은 어떻게 형성돼 있을까. “월간중앙”은 이들 기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맥과 그 형성과정, 그리고 인맥에 얽힌 이야기 등을 분석했다. [편집자]

[검찰]
최근 기자는 법조인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호남·고려대·경기고·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등 이른바 검찰내 5대 인맥의 파워이동 현상을 주가 흐름에 빗댄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해당주식의 ‘내부관계자’들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며 도출해 낸 결론은 대체로 이러했다.

◇호남주(株)
:상한가 행진중. 현 정부 들어 가장 상승폭이 큰 우량주로 급부상함. 과거 투자자들 사이에 기피종목으로까지 인식됐으나 최근 급격한 기반확대로 블루칩(대형주)
의 자리에까지 오름. 특히 주목되는 개별 주식은 신승남(대검차장)
·신광옥(대검 중수부장)
주.

◇고려대주:소폭 상승 또는 강보합 장세. 외부의 불안요인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응집력 있는 소재 특성상 전통적인 옐로칩(중·대형주)
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함. 대표주인 김정길(법무장관)
주를 중심으로 향후 장세에서도 상승세가 예상됨.

◇TK주:보합 또는 조정장세. 과거의 명성을 토대로 주가 자체는 아직도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박순용(검찰총장)
주라는 초대형주 때문에 전체적인 체면을 유지할 뿐 실제 소재내용은 과대평가돼 있다는 평가도 있음.

◇PK주:전반적인 하락장세. 대형주가 대부분 상실됐고 기대주에서도 별다른 호재가 없어 지루한 보합 또는 약세장세가 계속될 듯. 다만 그때그때의 장세에서 개인적 실적을 바탕으로 한 개별적 상승은 기대할 만함.

◇경기고주:급격한 하락세. 과거 줄곧 대형 우량주의 위치에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 가장 하락폭이 큼. 이미지 퇴색과 갖가지 유언비어로 한때 하한가 행진을 계속하다 최근 겨우 멈춘 상태임. 제1의 주가총액이 말해 주는 두터운 기반을 바탕으로 일부 개별주들이 대형주로서의 관록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음.

참석자들 모두가 허리띠를 풀어놓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주고받은 이야기였지만 현재의 검찰 내부사정을 곰곰이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점들이 적지 않았다.

검찰 고위간부나 평검사나 상관없이 전국 1천여명의 검사들은 자신들을 지연·학연 등으로 나누어 특정 파벌이나 인맥으로 분류하는 것에 한결같이 반감을 나타낸다. 자신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철저한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권의 파벌싸움인데 어떻게 검찰조직을 이에 비교할 수 있는냐는 것이다. 검사들의 이같은 항변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 최고의 시험인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검사에 임용된 엘리트들은 기본적으로 검찰내 요직 배치에 대해 ‘프로페셔널리즘’을 신봉하고 있다. 쉽게 말해 평검사 시절 각종 인사청탁으로 선망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그것은 한번의 기회일뿐 결국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전진과 낙오가 결정된다는 믿음이며 이는 검찰의 현실과도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그러나 검찰은 업무의 속성상 권력에 민감한 조직이다. 따라서 권력의 변화가 검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이 과정에서 지연과 학연 등 이른바 한국 사회내에서의 각종 인맥이 작용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그렇다면 김대중정부 출범 중반기에 접어든 지금의 검찰 인맥은 어떤 모습일까.

앞서 주식에 빗대 언급한 대로 지금의 검찰 내부를 살펴보면 호남 인맥의 약진이 단연 두드러진다. 검찰내 다른 모든 인맥이 해체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력하다. MK(목포·광주)
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현 정부 출범 초기(98년 3월)
를 기준으로 전국의 검사수는 1천66명. 이들의 출신 고교는 2백40개교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서울 3백86명 ▶TK 1백73명 ▶호남 1백72명 ▶PK 1백57명 ▶충청 82명순이며, 고교별로는 ▶경기고 65명 ▶경북고 55명 ▶전주고 39명 ▶광주일고 30명 ▶대전고 28명순이다.

이같은 분포를 염두에 두고 검찰내 요직의 이동 상황을 살펴보자.
검찰 조직은 정부 조직 중 차관급 이상의 직책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으로, 장관급인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제외한 차관급(검사장 이상)
만도 40명에 이른다.

40명 중 이른바 ‘실세’로는 대략 7자리를 꼽을 수 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외에 고검장급에서 대검 차장검사, 지검장급에서 ‘빅4’로 불리는 서울지검장·법무부 검찰국장·대검 중수부장·대검 공안부장이 그 자리다.

장관과 총장의 막중한 역할은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겠다.
대검차장은 총장을 옆에서 보필하는 종가집 맏며느리 같은 자리. 사실상 내부적으로 전국 검찰의 수사 상황을 총괄지휘하기 때문에 김영삼정부 이후 총장감을 앉히는 경우가 늘어났다. 김두희·박종철·김도언씨가 차장에서 곧바로 총장으로 승진했다.

최근에는 과거 중수부장 관할이던 범죄정보관리과를 확대 개편, 공안정보·범죄수사정보 수집을 총망라한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차장 직속으로 두게 해 더욱 권한이 확대됐다.

서울지검장은 검찰내 최고의 엘리트 검사들을 부하로 두고 전국 사건의 반 이상을 처리하는 막중한 자리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권을 두손에 쥐고 있다. 대검 중수부장은 정치권·재계가 벌벌 떠는 사정(司正)
수사를 총지휘한다. 대검 공안부장은 진형구 전 검사장 파동 이후 다소 위축된 감이 없지 않지만 대공·노동·학원 등 중요한 공안 정보를 총괄 관리, 지휘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 7자리 중에서 현재 김정길 법무장관·신승남 대검차장·임휘윤 서울지검장·신광옥 대검 중수부장 등 과반수가 넘는 4명이 호남 출신이다. 이어 중복된 경우도 있지만 고려대 출신(김정길·신광옥·김각영 공안부장)
이 3명이며, TK(박순용 총장)
와 경기고(한부환 검찰국장)
출신이 각각 1명이다.

과거 김영삼정부 시절에는 7자리를 차지한 20명 중 불과 김태정·최환씨 2명만이 호남 출신이었다. 그나마 이들은 각각 부산과 충북 영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당시에는 정통 호남인맥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김대중정부에서는 지금까지 7자리를 차지한 13명 중 6명이 호남출신이다.
호남 인맥의 급부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같은 핵심 요직에 이르는 전단계의 주요 보직에도 호남 출신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단적인 예가 새 정부 출범 이후 해남지청장 출신들의 화려한 전진 배치다. 해남지청은 지청장을 포함하여 검사가 고작 3명뿐인 소규모 청인데 현재 이들의 보직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신광옥 대검 중수부장이 1대, 김대웅 대검 강력부장이 2대, 김승규 수원지검장이 3대다. 5대 김규섭 대검 공판송무부장, 6대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 9대 명동성 목포지청장, 10대 문성우 법무부 검찰1과장, 11대 이귀남 서울지검 특수3부장, 12대 최진안 안기부 파견 부장검사, 14대 박철준 대검 공안2과장 등이 동기들 중에서 모두 선두자리를 꿰차고 있다.

현재 호남인맥의 대부로는 신승남 대검 차장검사와 신광옥 대검 중수부장, 임휘윤 서울지검장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신차장과 신부장은 과거 정권에서 시련을 겪고 권토중래한 인물이다.

신차장은 목포고와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사시9회 수석 합격 등의 경력이 말해 주듯 대단한 수재형이다. 93년 슬롯머신사건과 공직사정 등을 지휘하던 서울지검 3차장 시절까지는 줄곧 선두를 달렸으나 포목상을 하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검사장 승진에서 연거푸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전주지검장에서 일약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부상했고 1년여만에 다시 대검차장으로 승진했다. 역대 차장 중 사상 최대의 힘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차기 총장구도와 관련, 독보적인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신차장은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며 “과거 물먹고 마음고생했던 때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자세를 낮추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주목의 대상으로 단숨에 뛰어오른 인물이 신광옥 중수부장이다.
광주일고·고려대 법대(사시12회)
출신인 그 역시 신차장과 마찬가지로 서울지검 2차장까지 동기 중에서 앞서나가며 승승장구했으나 검사장 승진에서 두번이나 쓴맛을 봤다. 임휘윤 현 서울지검장, 한부환 검찰국장 등 무려 5명의 동기생이 검사장에 오를 때까지 승진에서 누락됐다.

그러나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고검차장 자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으로 발탁됐으며 대구지검장을 거쳐 8월말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컴백했다. 신중하면서도 일처리가 치밀해 무게가 느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임 서울지검장은 이리 남성고·서울대 법대(사시12회)
출신으로 호탕한 대인형이다. 걸걸한 말씨에 소탈한 성격이면서도 일처리가 깔끔해 동기 중에서 줄곧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호남출신의 이같은 약진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두가지 시각을 보이는 것 같다.

“과거 정권에서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불이익을 받았던 인사들이 현 정부 들어 제자리를 찾았다”는 평가가 첫번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니냐. 프로페셔널한 검찰 사회에서 함량미달인 사람까지 요직에 등용하면 일할 의욕이 나겠느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검찰내에서 이같은 특정 인맥의 독주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노태우정부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TK출신들이, 김영삼정부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PK출신들이 주도적인 인맥을 구축했다.

경기고 출신은 수십년간 검찰내 최대 학맥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중요 인맥을 형성해 왔으나 현 정부 들어 이런저런 이유로 미운털 박힌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따라서 이런 변화에 익숙해(?)
있는 검찰로서는 호남인맥의 등장에 대해 일정 수위까지는 용인하는 분위기가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평검사를 중심으로 한 소장세력들은 이번 정부에서 인맥을 중심으로 주요 포스트가 정해지는 비이성적 관행들을 모두 불식시키고 오로지 실력과 노력과 사명감으로 평가받는 검찰조직을 만들기를 학수고려대하고 있다. 한 검사는 “처음 검사로 임용됐을 때 선배로부터 ‘검찰 인사는 갖가지 연줄을 통해 빽을 써야 최소한 불이익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며 “이제는 과거 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쪽도 명예회복의 기회를 얻은 만큼 실력 본위로 조직이 다져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검사는 “인맥에 의존한 조직은 결국 정치권의 입김에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의 염원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비이성적인 인맥구조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욱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8호 199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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