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칠레서 한국이 일본 자동차 이긴 것은 ‘FTA 선점 효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한국·중국·일본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무역 영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격전장의 예가 남미의 칠레다. 한국이 FTA로 칠레 시장을 선점하자 시차를 두고 중국·일본이 뛰어들어 한국의 영토를 잠식했다. 한국은 2004년 칠레와 아시아·남미 국가 간 최초의 FTA를 발효했다. 한국의 칠레 수출 규모는 2003년 5억2000만 달러에서 2009년 22억3000만 달러로 4.3배, 같은 기간 칠레산 수입은 10억6000만 달러에서 31억 달러로 3배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FTA로 평가받는 이유다.

 특히 FTA 체결 이후 한국의 칠레 시장 점유율은 눈에 띄게 늘었다. 송백훈(경제학) 성신여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산의 수입시장 점유율은 FTA 발효 직전 해인 2003년 2.9%에서 2007년 7.2%까지 수직 상승했다. 그러다 2008년부터는 조금씩 감소해 2009년에는 5.6%로 떨어졌다. 2006년엔 중국이, 2007년엔 일본이 각각 칠레와 FTA를 발효해 한국산의 시장 확대를 저지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칠레 시장 점유율은 FTA가 발효되기 전인 2005년엔 8.5%였지만 이듬해부터 크게 늘었다. 2009년엔 13.3%에 이르렀다. 인접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 국가로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FTA를 체결한 뒤에도 점유율이 조금 오르는 데 그쳤다. 일본과 한국의 경합 제품이 유사한데 한국이 먼저 FTA를 체결해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일본 제품이 한국 제품을 밀고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칠레에 자동차·전자기기·가전제품 등을 주로 수출한다. 일본·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다. 가장 대표적인 품목인 자동차의 경우 2003년 시장 점유율이 16%에 불과해 일본(29.5%)에 이은 2위였다. 그러다 FTA체결 후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었다.

2009년에는 한국산 자동차 점유율이 37%까지 올라섰다. 일본을 11%포인트 차로 누른 것이다. 뒤늦게 일본이 FTA를 체결했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한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나 아세안도 한·중·일의 격전지였다. 일본이 2002년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하자 우리나라와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고 FTA를 서둘렀다. 아세안(동아시아국가연합)과도 마찬가지다. 2003년 중국이 먼저 협정을 맺자 우리나라와 일본이 가세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이나 일본이 FTA를 체결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체결하거나 협상 중인 나라와 거의 겹친다. 세 나라 가운데 어느 한 나라가 FTA를 체결하면 곧바로 나머지 두 나라의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 격전지는 인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12억 인구의 거대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초 FTA의 일종인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FA)’을 발효시켰다.

그러자 일본이 가세했다. 지난해 10월 협상을 마친 상태다. 중국은 여전히 인도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FTA로 10%대로 높은 인도의 관세율이 철폐될 경우 인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중국산에 대한 경쟁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물론 그때는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허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