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게이트의 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조선시대 세종 8년(1426년)에 우의정 조연, 곡산부원군 연사종과 함께 병조판서 조말생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죄목은 장오죄(贓汚罪). 관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정하게 이익을 취하는 범죄, 오늘날의 뇌물수수죄에 해당한다. 민간의 노비소송을 몰래 거들어주고 노비를 뇌물로 받은 혐의였다. 결국 이들은 귀양을 떠나야 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장오죄로 처벌당한 관리들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관물을 도둑질한 자’라는 뜻으로 ‘도관물(盜官物)’이란 낙인을 새긴 경우도 있다. 조선 후기에는 세도정치가 강화되고 매관매직과 뇌물이 성행하면서 조선의 패망을 앞당겼다는 분석이 있다.

 동서고금을 떠나 뇌물이 없던 시기는 없다. 뇌물과 선물의 경계선이 시대 사정에 따라 달랐지만 말이다. 한자 ‘뇌물 뇌(賂)’는 조개 패(貝)에 ‘각기 각(各)’을 결합해 만든 조어로 개별적으로 유통되는 재화란 뜻이다. 조개껍데기가 화폐로 통용되던 시절 사적으로 주고받는 선물이었다. 이집트 왕조에선 뇌물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이라며 단속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뇌물을 매개로 한 권력형 부패를 ‘게이트’라고 지칭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기업에서 수천억원씩 챙겨 ‘통치자금’ 명목으로 끌어모았다. 김영삼 정부 땐 한보비리·세풍(稅風) 사건이 있었지만 ‘불법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불렸다. 이때만 해도 돈 받는 사람이 갑(甲)이었고, 주는 사람이 을(乙)이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정말 힘이 셌던 시절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용호·진승현·윤태식·최규선 4대 게이트’가 터지면서 ‘게이트 시대’가 본격 열렸다. 이때부터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점이 과거와 달랐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정부 때 ‘박연차 게이트’로 이어졌다. 갑과 을의 입장도 바뀌었다. 돈 준 사람이 자신의 보호 수단으로 뇌물을 받은 사람의 명단, 즉 ‘리스트’를 가지고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뇌물의 액수도 예전의 천문학적 액수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다. 반대로 리스트는 길어졌다. 한 사람의 무소불위 권력이 모든 문제를 풀던 시절은 지나갔다. 사방에 ‘기름칠’을 하느라 로비의 대상이 늘어난 것이다. 이번엔 ‘함바 게이트’에 떨고 있단다. 돈의 불을 찾아 헤매던 부나비들 말이다. 게이트가 진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다는 점은 다소 위안이 된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