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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나몰라라 … 대규모 집회 여는 민노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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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을에는 철조망까지 둘러치고, 농민들은 문밖 출입을 자제할 정도로 조심하고 있어요. 집회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날짜를 뒤로 좀 연기해 달라는 것이죠. 이런 최소한의 요구마저 무시한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요.”

 6일 전북도청을 찾은 농민 임선택(59)씨는 대규모 집회를 추진하는 민주노총(위원장 김영훈)을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민주노총은 8일 오후 2시부터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전주버스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한 달째 계속되는 전주시내 버스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전국에서 5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집회 후에는 5000여 명이 전주시청까지 3㎞ 구간의 거리행진도 할 계획이다. 농민들은 대규모 집회에 긴장하고 있다. 구제역(口蹄疫)이 이 지역에도 퍼지면 그동안 결사적으로 방역망을 구축한 게 헛수고가 되면서 축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절박한 농민들은 그래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호남·경남·제주는 아직까지 구제역 발병이 없는 ‘청정 지역’이다. 특히 호남은 구제역 예찰을 시작한 1934년 이후 한 번도 발병한 적이 없다. 일부 농민은 “호남이 뚫리면 전국이 초토화된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농민단체들은 이전부터 민주노총이 집회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라는 성명서를 잇따라 발표했다.

민주노총 집회로 방역망이 뚫리면 자칫 농민과 민주노총의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는 “구제역의 재앙이 농촌을 두려움과 공포로 뒤덮고 있다”며 “자칫 노동자와 농민이 대립하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만큼 민주노총 집회를 유보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우협의회·축협협의회·양돈협회 등 축산농가들도 “구제역이 사상 유례없이 창궐해 전시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사람과 차량에 의한 전파가 가장 위험한데, 전국에서 수천 명이 모이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지자체도 민주노총 집회 취소를 강력하고 요구하고 있다. 전북도는 “연말연시 이벤트를 대부분 취소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는 자제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호남 방어선이 무너질 수 있다”며 집회 취소를 요구했다. 전주시도 “민주노총 주장이 아무리 정당해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집회는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런 농민들의 호소를 거부했다. 김연탁 민주노총 전북본부 교육선전국장은 “하루에도 수천 명이 고속버스·열차 등을 통해 들고 나는데 왜 우리 집회만 문제를 삼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참가 노조원도 대부분 도시에서 오며, 집회 후에는 곧바로 돌아간다”며 “이번 행사가 마치 구제역을 퍼뜨리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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