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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박정희의 실용적 대북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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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희창
수석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며 “북한이 진정성을 보인다면 남북경제협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의지와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일종의 조건부 남북대화론이다. 이는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대화와 교류협력을 제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위협을 가해온 것에 대한 응수다. 일단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평가된다. 특히 북한에 대한 압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점이 그렇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에 관한 미국·중국의 기본 인식이나, 통일을 염두에 둔 남측의 중·장기적 대북정책을 감안하면 한계가 있다.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어느 정도의 긴장감 있는 평화’라고 볼 수 있다. 한·미 동맹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게 미국의 1차적 목표다. 긴장감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한반도에 전면전의 불똥이 튄다거나, 역으로 ‘완벽한 평화시대’가 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자(前者)라면 감당하기가 불가능하고, 후자(後者)라면 동북아에서 미군의 존재 이유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동안 대북정책에 대해 강경과 유연을 되풀이해 온 배경은 여기에 있다. 연평도 사태 때는 항공모함 전단을 서해에 진입시켰으나, 1983년 아웅산 사태로 격분한 남측의 북한 공격 계획은 만류한 것이 한 예다.

 중국의 경우는 한반도의 안정이다. ‘북한 살리기’ 노선을 확정한 2009년 하반기 이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 등 막무가내로 나와도 ‘한국이 좀 더 참아야 한다’는 억지를 편다. 국력이 우세한 한국이 북한에 대해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는 판단마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붕괴와 미국의 서해 진입 방지가 중국의 사활적인(vital) 국익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공동사설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절박한 과업이고, 남측은 동족대결 정책을 철회해야 하며, 전쟁이 터지면 핵 참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남측이 지원을 하지 않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사태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이미 이 점은 지난해부터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치된 견해다.

 이렇게 복잡미묘한 주변 역학관계에서 북의 진정성만 기다리다 도발이 생기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까. 물론 이번엔 남측이 제대로 응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한국에 책임이 있다’고 화살을 돌릴 것이다. 우라늄을 포함한 북한의 핵 능력 상승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도 더욱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한국이 대북 응징에 성공했다 해도 ‘북한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좀 더 전략적인 대응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북전략이 주목된다.

 남북 간 선의(善意)의 경쟁을 선언한 박 대통령의 1970년 광복절 경축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북한은 타도의 대상이었다. 반공법 등 각종 법적 장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군인들은 점호 때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을 외쳤다. 2년 전엔 북한의 특수공작원들이 청와대 습격을 기도하고, 울진·삼척에 침투해 많은 남측 군인과 민간인이 살상당했다. 이렇게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 충만할 때 박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체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적 경쟁을 선언한 것이다. 그 배경은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한 단계 성장시키기 위해선 남북 간 긴장완화가 필요하다는 박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안보를 철저히 챙기면서도 국가적 목표 달성을 위해선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 같은 심모원려(深謀遠慮)적인 전략적 마인드는 현 정부에도 필요할 것 같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군의 실망스러운 대비태세를 보강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남북간 당국 회담을 제의해야 한다. 대화 제의를 굴욕이 아니라 유효한 전략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수용하지 않으면 명분에서 우리가 우위를 차지한다. 북이 수용하면 대화를 통해 분단 상태를 관리해 나가면서 안보태세 확립에 더욱 박차를 가하면 된다. 이것이 국민통합을 이뤄가면서 궁극적으론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다.

안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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