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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미·중이 진정한 G2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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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새해 첫날 뉴욕 타임스에 실린 니컬러스 크리스토프의 칼럼, ‘평등, 영혼의 진정한 양식(Equality, a true soul food)’을 관심 있게 읽었다. 영국의 저명한 역학(疫學) 전문가인 리처드 윌킨슨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불평등은 강력 범죄, 마약 중독, 미성년자 임신, 중도 퇴학, 심장병, 정신병, 비만 등 각종 사회·신체적 병리 현상의 주범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최상위 1%가 가진 재산이 하위 90%가 가진 재산을 다 합한 것보다도 많을 정도로 심각한 미국의 경제적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지 못하면 미국은 더 많은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짓고, 더 많은 경찰관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오죽 심각하게 여겼으면 신년 벽두부터 이런 섬뜩한 글을 썼을까 싶다.

 중국 사회의 불평등을 풍자한 글이 작년 말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회자(膾炙)된 적이 있다. 베이징 시내에 웬만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려면 몇 년이 걸리는지 계산한 글이다. 평균 시세가 300만 위안(약 5억1000만원)인 100㎡(30평)짜리 아파트를 기준으로, 시골 농민은 당나라 말기(10세기)부터 지금까지 뼈 빠지게 밭을 갈아 돈을 모았어야 하고, 평범한 블루 칼라 노동자라면 아편전쟁(1840년) 때부터 주말도 잊고 공장에서 일했어야 하며, 매춘부라면 18세 때부터 46세가 될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손님을 받아 1만 명을 채웠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내장식이나 가구, 가전제품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돈은 빼고 계산했다는 설명까지 붙어 있다. 경제 성장의 속도보다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1979년 1월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 내외가 지미 카터 미 대통령 내외와 백악관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19일 워싱턴 방문은 ‘G2’로 부상한 중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첫 방미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앙포토]

 미국과 중국 말고는 나라가 없는 것처럼 세상이 온통 ‘G2’ 얘기로 시끄럽지만 미국이나 중국이나 속으로 병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부자 망해도 3대(代) 간다고, 빚을 내고 달러를 찍어 그냥저냥 버티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면 중국의 곪은 상처는 워낙 빠른 성장세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중국의 가파른 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발전 모델로 실현 가능한 성장 잠재력은 거의 소진됐기 때문에 고통스럽더라도 최대한 서둘러 경제·정치적 구조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될 수 있다는 내부 경고도 나오고 있다(유용딩(余永定) 전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 곳곳에 땅을 파서 콘크리트로 메우는 토건(土建) 공사로 국내총생산(GDP)은 불어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 관리와 업자 간의 유착이 만연하고,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심각한 사회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글이 관영 매체인 인민일보(2010년 12월 23일자)에 실렸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심각한 내부 문제를 안고 있다. 네 탓 공방을 벌이며 한가하게 기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각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협력하는 상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한쪽의 위기는 바로 다른 쪽의 위기로 전이(轉移)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두 나라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다. 미·중 관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가 됐다. 두 나라의 협력과 갈등은 그대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19일로 예정된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의 역사적인 미국 국빈 방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미 스탠퍼드 대학의 이언 모리스 교수(역사학)는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세력 이동(power shift)’을 현실로 인정하면서도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심화로 100년쯤 후엔 동·서양의 구분이 무의미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서구가 지배하는 이유』). 그러나 그 전까지의 세력 이동 과정이 평화롭고 순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각성과 중국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후 주석의 이번 방미에서는 21세기의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가늠할 대원칙과 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40여 년 동안 홀로 짊어졌던 냉전의 부담을 털어내고, 국내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도한 군사비부터 줄여 국내 문제 해결에 돌려야 한다. 미국의 군사비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비를 합한 것보다도 많고, 2위인 중국보다 6배가 많다. 미국의 군사비 감축은 중국에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역과 환율 등 글로벌 경제에서도 양국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태를 통해 한반도의 높은 휘발성이 입증됐다. 북한이 또다시 도발을 해올 경우 전쟁은 현실이 될지 모른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남북한 당사자는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에도 재앙이다. 우라늄 농축 단계까지 간 북한 핵 또한 방치할 수 없는 발등의 불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부터 통일까지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 원칙과 방향도 제시돼야 한다. 모든 북핵 프로그램의 모라토리엄을 전제로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북·미 수교, 평화체제 전환, 대북 경제지원, 평화적 통일 원칙까지 일괄 논의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G2’의 역할이다.

 편을 갈라 대립하는 것은 20세기 냉전 시대의 유물이다. 미·중은 협력과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두 나라도 살고, 세계도 사는 길이다. 1979년 1월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은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그해 1월 1일 미국과 중국은 3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귀국성명에서 덩은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설파했다. 후 주석의 귀국성명에는 무엇이 담길 것인가.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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