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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현장 〈춘향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감독: 임권택
출연: 이효정(성춘향), 조승우(이몽룡), 이정헌(변학도), 김성녀(월매), 이혜은(향단)

"이리로 우르르, 저리로 우르르"

지난 5월 3일 크랭크 인에 들어간 임권택 감독의 신작 〈춘향뎐〉 촬영이 반환점을 돌아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특히 10월 21일부터 남원에서는 〈춘향뎐〉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변학도의 생일잔치와 그에 이은 어사 출두 장면이 촬영되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상당한 양의 세트와 소품을 준비해 놓았다. 생일잔치에 올라간 음식만 해도 6명의 전문 요리사를 동원하여 200여명 분을 준비하였고, 음식상은 팔각, 교자 등 각 종류로 100여 개를 준비했다.

21일부터 26일까지 동원되는 엑스트라는 약 1,500여명에 달했고 가마와 말, 그리고 수령복, 기생복, 중인, 통인, 선비복 등 각종 의상 6, 700여벌과 사극에서 처음 시도하는 기생들의 꽃장식까지 준비되었다.

아울러 변학도 생일잔치에는 남원 시립무용단장 임이조, 거문고 명인 김무길, 남원명창 대회 우승자 이난초 등이 각각 특별출연했다. 이는 〈춘향뎐〉을 정확한 고증에 입각해 옛 멋을 그대로 살리려는 임권택 감독의 의도다. goCinema는 바로 이 현장을 방문했다.

▶ 10월 25일

부산 국제 영화제 취재 덕분에 21일부터 진행된 〈춘향뎐〉의 초반 촬영을 보지 못한 goCinema는 25일 오전에 남원에 도착했다.
날씨는 아주 맑고 화창했으며, 기온 또한 20도 이상을 상회하여, 야외에서 활동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촬영 장소는 남원의 광한루였으며, 이날 촬영 씬은 어사 출두 장면이었다. 주로 군중 씬으로 이루어진 촬영은 트랙을 이용한 카메라 이동, 그리고 롱 쇼트 크기의 화면으로 촬영되었다. 홍보실장 송혜선씨는 이날 촬영을 한마디로 "여기서 우르르, 저기서 우르르"라고 표현했는데, 인물들간의 대사보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강조되는 군중 씬이었기에 이런 표현이 가능했다.

원래 임권택 감독은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그날 촬영을 준비하는데, 이 때문에 연출부가 전날 밤 과음을 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금기시되어 있다. 역시 이날도 새벽 5시부터 분장팀이 300여명의 엑스트라 분장을 준비했으며, 9시 30분 경부터 현장 연습이 진행되었다. 정오를 넘어서 점심을 먹기 전까지 촬영 팀이 찍은 것은 단 한 쇼트.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세 번 정도의 연습과 두번의 테이크 만에 OK 사인을 냈다.

원래 대규모 군중이 화면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사전에 미리 연습하고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 연출부들도 분장과 의상을 갖추고 엑스트라들 속에서 연기자들의 동선을 지휘하기도 한다. 물론 이날도 마찬가지. 오전
한 나절을 잡아 먹은 것은 분장과 현장 준비 때문이다.

보통 감독들이 "레디, 고" 사인을 하는데 〈춘향뎐〉촬영에서는 레디와 고 사이에 조상현 명창이 부르는 춘향가가 반드시 연주되었다. 이는 영화에서 판소리 자체가 "시나리오이기도 하고, 사운드이기도 하기 때문"(임권택 감독)이란다.

25일 촬영은 어사 출두 장면을 카메라 앵글과 위치를 바꿔가며 계속 촬영하였다. 수십명의 역졸들이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난입하는 장면은 화창하고 건조한 날씨 탓에 상당한 먼지를 피우기도 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광한루 주변에는 그날 수업을 야외 수업으로 대체하고 나온 남원의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진행되는 촬영을 흥미롭게 지켜 보기도 했는데, 나이 든 중년층은 주로 춘향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춘향 역을 맡은 이효정(17)은 자기 촬영분이 없었음에도 TV
매체와 인터뷰 때문에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학생들은 이효정보다 그를 인터뷰하는 TV 리포터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이날 촬영의 하이라이트는 약 7m 높이의 광한루에서 스턴트맨이 뛰어 내리는 장면. 광한루 상석에서 술과 음식을 먹던 이들이 어사 출두에 놀라 도망가려고 뛰어 내리는 내용이었다.이를 구경하기 위해 엑스트라로 동원된 광한루 위의 기생들 사이에서는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덕분에 임권택 감독은 NG를 내고 기생들의 동선을 잘 통제하라고 연출부들에게 지시를 해야만 했다.

순조롭게 진행된 이날 촬영은 오후 5시경에 끝났고, 이후 취재진은 남원에 제작진이 특별히 지은 옥사 세트를 방문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이미 넘어가 있어 사방은 칠흙같이 어두웠고, 산길 너머에 지은 세트로 가는 길은 덕분에 순탄치 않았다.

옥사 주위를 돌담으로 빙 둘러싼 이 세트는 당시 고증에 입각한 것으로,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면 남원시에 관광 자원으로 기증될 것이라고 한다. 옥사 안은 산골자기 한복판에 있는 듯한 으시시한 기분을 자아냈으며, 어둠 안에서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네라도 한 명 나타나야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29일부터 춘향이가 거지 꼴을 하고 나타난 이몽룡과 재회하는 장면을 여기서 찍는다고.

서울에서는 절대 보지 못할 능선에 걸린 만월을 쳐다보며, 취재진은 그렇게 남원 방문의 첫날을 마감했다.

▶10월 26일

이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게다가 비가 온다는 이야기까지 있어 촬영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였다. 정일성 촬영감독도 촬영 내내 빛에, 그리고 태양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을 보였다. 기온 또한 전날에 비해 상당히 쌀쌀한 느낌을 주어, 취재진은 어제와 다르게 점퍼나 두터운 윗도리를 껴입은 모습이었다.

이날 촬영된 내용들은 25일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변학도 생일잔치에 양반들이 도착하는 장면, 역졸들의 출두 장면, 이몽룡이 생일잔치 전에 마을 동태를 살피는 장면 등이었다. 25일 촬영은 광한루 앞 쪽이었으나, 이날은 광한루 뒤쪽의 숲에서 촬영되어 다른 장소라는 느낌을 십분 살리도록 했다.

아울러 엑스트라들도 주로 양민 분장을 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으며, 말도 동원되었다. 이 말은 하루 한번 빌리는데 약 25만원 정도라고. 물론 기수 값은 별도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막간에 인서트로 말이 울부짖는 지는 장면을 찍으려 했으나, 말이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말을 인솔한 기수 말에 의하면, 그런 장면을 찍으려면 "약간 성질있는 말을 데려와야 하는데, 오늘 온 말들이 너무 순해서 그렇다"고 했다. 사실 그가 말을 일부러 울부짖게 하려는 노력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말을 학대(?)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엑스트라를 비롯한 사람들은 말이 지나치게 가까이 오면 다른 곳으로 피하기도 했는데, 가수는 훈련받은 말이라 사람은 건드리지 않으니까 지나치게 피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흐린 날씨는 결국 촬영에 장애가 되었다. 이제 변학도의 육방들이 역졸들의 습격을 받는 장면을 찍으려는 순간, 임권택 감독은 연출부를 불러 모았다. 결론은 오늘 촬영은 여기서 끝내기로.

25일 역졸들의 습격 장면 안에서 이어가는 장면인데, 광량이 너무 차이가 나서 제작진이 촬영을 강행할 경우, 이것은 이후 영화 화면에서 필히 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때가 오후 4시경이었는데, 제작진은 열악한 광량 조건에서 충분히 찍을 만큼 찍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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