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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축구하는 남자 조광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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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광래(57·사진) 축구대표팀 감독은 경남 진주 사람이다. 그의 진주 사투리는 유난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말주변이 없지는 않다. 강한 진주 억양에 실린 그의 호소는 선동적이다. 선수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투지를 북돋운다. 그런 그가 말 대신 편지로 선수들과 소통하고 있다.

 조 감독은 요즘 편지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는 진심이 담긴 글 한 줄이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편지를 통한 ‘감성 리더십’이다. 그는 대표팀 감독 데뷔 경기인 지난해 8월 9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대표선수들에게 처음 편지를 썼다. 지난해 12월 13일 제주도 전지훈련을 시작할 때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도착한 12월 27일 세 번째 편지를 선수들에게 보냈다.

 조 감독은 경남 감독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편지를 썼다. 2009년 5월 10일 K-리그에서 6무 5패의 부진 끝에 강원을 상대로 첫 승리를 했을 때다. 편지에 “내년에는 우승을 목표로 달리자”고 썼다. 경남의 홍보 담당 박문출씨는 “조 감독의 성난 듯 투박한 말투 속엔 아버지 같은 사랑이 숨어 있다. 편지를 쓰면 그의 진심이 더 잘 드러났다”고 전했다. 김귀화 전 경남 수석코치는 “상대팀 장단점을 편지로 설명하자 선수들이 잘 기억했다”고 귀띔했다.

 제자인 이청용(23)이 잉글랜드 프로축구 볼턴에 입단한 2009년 8월에는 “축구는 머리로 하는 게임이다.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머리를 써야 한다. 그러면 (박)지성이보다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쥐어줬다.

 조 감독의 지난해 12월 27일자 편지는 한글 프로그램으로 깔끔하게 작성한 A4 용지 두 장 분량이었다. 거기엔 아시안컵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그는 “5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멤버로 한국 축구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는 주인공이 됩시다”라고 동기 부여를 했다. “일본·이란 등 경쟁국들에 우리의 실력이 한 수 위인 것을 인식시켜 줍시다. 여러분은 아시아 최고 선수입니다”라며 태극전사들의 자신감을 북돋우기도 했다.

 조 감독의 ‘편지 리더십’은 효과적이다. 골키퍼 정성룡(성남)은 “요즘 선수들은 종이에 쓴 편지 자체가 신기하다. 잠자기 전에 차분히 읽으면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태극 마크에 대한 책임감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감독이 미팅을 통해 지시하면 일방적인 요구가 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편지 형식으로 주문 사항을 전하고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줬다. 경남에서 효과가 컸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조광래 감독은 얘기 끝에 “그런데 애들이 숫기가 없는지 아직까지 답장을 보낸 놈이 한 명도 없다”며 멋쩍게 웃었다.

 아부다비=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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