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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최순우의 형용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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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호 04면

담담한, 의젓한, 어리숭한, 솔직한, 정다운, 온아한, 소산한, 질소 담백한, 한아한, 갓맑은, 너그러운, 늣늣한, 고담한, 싱거운, 구수한, 아련한, 은근한, 익살스러운, 고급한, 편안한, 간결한, 청순한, 맵자한, 겉부시시한, 담소한, 조촐한, 원만한, 그윽한, 정제된, 청정스러운, 따스한, 서글픈, 화사한, 무던한, 부드러운, 홈홈한, 소탈한, 명상적인, 간명한, 어진, 무던한, 풍요한. 순후한, 무심한, 희떠운….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 <7>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1만9800원)에서 저자 최순우<사진>가 한국미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수식어들이다. 우선 우리말에 이렇게 많은 형용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형용하는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게 세분화되어 발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열된 단어만으로도 한국미의 세계를 얼추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눈에 ‘이것이 한국미다’라고 느끼게 하는 경지가 있고, 또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의 경지가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실체를 호명하는 작업, 그 실체를 설명하는 언어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그 답을 구했다.

단일한 형용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해맑고도 담담해서 깊고 조용한, 부드럽고 상냥하며 또 연연한, 무심하고도 순정적인, 칭칭하고도 가냘픈, 늣늣하고도 희떱고 희떠우면서도 익살스러운, 번잡스러운 듯싶으면서도 단순하고 단순한 듯싶으면서도 고요한, 선의와 치기가 깃들인, 화려하고도 어리광스러운, 스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호연한…” 같은 표현들은 한국미의 교묘함을 보여준다. 한국미는 미묘한 감성의 변곡점을 통과하며 느껴지는 복합적이고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시대에 따른 변이는 있으나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의 미학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 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쎄다’라는 말을 곧잘 쓴다. 대략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과 뜨르르한 규모를 자랑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이런 ‘쎈’ 미술품과는 달리 고전적인 한국미는 자세를 낮추어 눈여겨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곱고 섬세하며 높은 경지에 이른, 그러나 한 번 눈을 뜨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한 중독성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최순우의 형용사 중에는 뜻을 쉽게 알 수도 없고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단어들도 더러 있다. 그가 느낀 것을 지금의 우리는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1916년생인 최순우의 추억 속에는 “으레 밝은 창가의 수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고운 누이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들기름과 콩댐으로 정성들인 장판방의 신비로운 밀화 빛 따사로움”이 있다.

그가 바라보던 풍경과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1984년 작고한 그는 디지털과 IT강국의 한국을 보지 못했고, 그가 보았던 근대화 이전의 고운 산천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미적 감수성의 근원이 원천적으로 단절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그의 글은 더욱 빛을 발한다. 산천과 사람은 바뀌었어도 한국 미술품과 한국적 아름다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그 미감은 우리의 DNA 속에 내재해 있다. 감수성의 단절을 메워주고 한국미를 일깨워주는 것이 최순우의 이 책이다.

이 책은 평생을 박물관에서 보낸 선생의 글 중에서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글들만 추려 묶은 글이다. 얼마 전 컬러 도판을 실은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된 이 책은 94년 초판 발행 이래 지금까지 50만 권 이상이 팔린 국민서적이다.

우리 미술품을 상찬하는 최순우의 시각은 민족의 생활감정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가 사용하는 풍부한 형용사들은 한국미를 머리로 이해하고 도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감정에서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이끌어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순우를 회고하는 사람들은 그가 ‘멋’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먼저 이해한 것은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이요, 거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생활 감정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감식안이 생겨나고 이 감식안은 작품의 세세한 디테일을 읽어내고 긍정해내는 힘이 된다.

“민족적 아름다움이란 어디서나 그 자연과 인문, 그리고 그 족속의 감정이 멋지게 해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격조가 생긴다”는 주장대로 그는 자연과의 조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한국미의 최고 덕목 중 하나로 꼽는다. 건축물의 위치와 크기가 산천의 풍광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점지의 묘’가 그런 예다.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자연친화적 태도는 다른 미술품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기물들을 볼 때는 쓸모 있는 기능과 또 시각적으로 주위 환경과 그것을 쓰는 이의 분수에 알맞은 ‘제격’을 갖추었는지를 따진다. 자연과 예술을 하나의 격으로 여기는 한국 미술은 “무엇을 이렇게 그리고자 한 계산도 없고 또 그런 대로 따지고 봐도 별로 서운한 구석도 없어 보이”며 “기교를 넘어선 방심의 아름다움”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반영된 것은 한국인들의 담담한 마음씨다. 그는 한국인들이 어질고 순하며 또 매우 자유로운 영혼과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불상들에서 읽어내는 것은 한국인 얼굴들의 원형이요, 더 나아가 전 인류에 의해 상찬되어 마땅한 ‘미소의 원초’다. 5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 구절구절에서 최순우는 우리의 민족적인 조형 역량을 가늠하며 늘 대견스러워한다. 그 유전자가 우리에게 있고, 언젠가는 발현될 날이 또 올 것이다.

몇 년 전 일본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대형 달마도를 선보였을 때, 아이쿠 싶었다. 달마도는 한·중·일 삼국 모두의 전통적인 그림인데,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것으로 현대 미술을 만들었으니, 이제 중국과 한국 작가들이 달마도를 가지고 무엇을 해보았자 짝퉁 소리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우선 들었다. 거대하고 그로테스크한 망가풍의 달마도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대표하는 중요한 그림이 되었고 달마도는 일본산(産)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 아니메와 망가를 근거로 한 J-pop의 대표적인 작가지만, 그가 일본 전통회화 전공자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징후들이 이제 동아시아 미술, 한국 미술의 중요한 티핑 포인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국 작가들은 유학, IT 강국의 이점 등으로 이미 충분히 글로벌한 관점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뒤가 여전히 허전하고 유행하는 담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게만 되는 것은, 그들의 미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멀리 가기 위해서 때로는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국가 간 경쟁은 더 가열차지며 각국의 민족적 고유성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술에서의 경쟁 무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시킬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이다. 이런 점에서 민족적 전통은 더욱 중요한 자산이 된다. 축적된 작가적인 역량, 세계 경제 13위의 한국의 지위, 새로운 것을 갈급하는 세계 미술계의 요구들은 새로운 도약의 기틀이 될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바로 최순우가 언급한 바대로 “좋은 안목을 지닌 사색하는 눈들”이다. 든든한 배경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다. 최순우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우리 뒤에 진정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한국미의 배경이 존재함을 실감해 본다.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업으로 여긴다.『러시아 미술사』『미술의 빅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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