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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뒤 처음 헌법 낭독하는 미 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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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 미국 국민은, 보다 완전한 연방을 건설하기 위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내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 방위를 제공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우리 자신과 후손들에게 자유의 축복을 확보해 주기 위해 미 합중국의 헌법을 제정하고 확립한다.”

제112회 미국 하원 개원 다음날인 6일 미 의사당에서는 헌법 전문(全文)이 울려퍼진다. 미 하원 역사상 처음으로 의원들이 헌법을 낭독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에게 헌법을 존중하게 하고 헌법에 근거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되새기게 하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제112회 의회에서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면서 하원 역사 221년 만에 처음으로 헌법을 낭독한다고 지난해 12월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취임 이튿날인 1월 6일 27개 수정헌법을 포함해 총 4543개 단어로 구성된 헌법 전문을 의원들이 30분에 걸쳐 큰 소리로 낭독한다”고 전했다.

 낭독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하원의원들은 돌아가며 헌법을 읽는다. 공화당 원내지도부는 “민주당 의원들이 낭독에 참여하는 걸 환영한다”며 초당적 헌법 낭독을 희망했다. 베이너 차기 하원의장은 “우리는 늘 지역 주민을 대표한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헌법에 대고 맹세하는 것”이라며 “헌법 낭독은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겠다는 뜻,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헌법 낭독은 지난해 11월 2일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의 하원 인수위원회가 지난해 말 하원운영개정안을 만들면서 택한 방안이다. 개정안은 오는 4일 공화당 하원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후 다음날 민주당과의 협의를 거쳐 하원 본회의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공화당이 헌법 낭독을 추진하는 건 미 헌법이 공화당의 원칙과 부합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미 헌법이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자유, 기업 활동의 자유, 독재 반대, 가족·이웃·지역사회 보호라는 당의 다섯 가지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고 본다. 공화당의 여론조사 기관인 ‘퍼블릭 오피니언 스트래티지스’에 따르면 공화당원 5명 중 4명이 “미국의 통치체제가 헌법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압승에 기여했던 보수주의 풀뿌리 운동인 ‘티 파티’ 지지자들은 ‘헌법적 보수주의자’를 표방하며 독립전쟁을 통해 미국을 세웠던 ‘건국의 아버지’의 이념과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 정치적 목표라고 주장해왔다. 특히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 최고 과제로 추진했던 건강보험개혁법과 관련해 “헌법에는 모든 개인에 대한 건강보험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며 이 법의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 조항을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파산 위기의 제너럴모터스(GM)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이 ‘작은 정부’를 규정한 헌법 조항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공화당이 헌법을 독과점한 채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며 공화당의 헌법 강조에 부정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헌법이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공화당의 입맛에 맞춰 헌법을 재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WP는 “하원에서 헌법 전문을 낭독하고 헌법 조항을 근거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은 한마디로 공화당의 정치적 술책”이라며 “이런 규정들은 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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