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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곽노현 교육 정책, 공청회도 없이 밀어붙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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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로 취임 6개월을 맞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행보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취임 직후부터 교원평가·학업성취도 평가 같은 주요 교육정책을 놓고 정부와 대립 각을 세우더니 급기야 체벌 전면금지로 교실 위기 상황을 만들고 있다. 얼마 전엔 교육과학기술부와는 거꾸로 가는 방과후학교 제재 방침을 내놓는가 하면, 두발·복장 자율화와 중간·기말고사 폐지 뜻도 비쳐 학교 현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교육정책을 준비와 대안 없이 성급하게 추진하거나 공청회 한번 없이 설익은 생각을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러니 ‘여론에 귀 닫은 곽노현식 학교실험’ ‘막가파식 좌파독재’라는 비난을 듣는 게 아닌가.

 교육문제만큼 당사자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도 드물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신중을 기해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정책을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하물며 학생·학부모·교사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현장의 수용 가능성도 외면한 채 밀어붙이는 정책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체벌 전면금지만 해도 그렇다. 수십 년간 찬반 논란이 지속돼 온 문제를 ‘오장풍’ 폭력교사 사건을 계기로 느닷없이 시행한 것부터가 무리라고 본다. 문제학생에 대한 체벌 대체 수단도 마련하지 않은 채 서두르다 보니 교권 실추와 교실 황폐화 같은 부작용이 생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교과부가 뒤늦게 정학(停學)과 유사한 ‘출석정지’를 도입하고 팔굽혀펴기 같은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대안을 내놨지만 교육청 기준과 상충(相衝)해 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어제 한국교총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교사의 99.5%가 내년에 학생지도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본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년부터 초·중·고가 방과후학교를 강제로 실시하면 제재하겠다는 교육청 방침도 일선 학교에 혼란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방과후학교 참여율이 높은 학교는 성과급을 더 주거나 상(償)을 주는 교과부와 엇박자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은 학원에 가지 않고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왜 막느냐는 일선 학교의 반발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두발·복장 자율화와 초등학교 중간·기말고사 폐지 문제도 불쑥 내놓을 만큼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두발·복장 자율화는 1983년 시행됐다가 탈선 증가, 계층 간 위화감 등의 부작용으로 2년 만에 철회된 민감한 문제다. 현재 교사의 67%, 학부모의 57%가 반대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중간·기말고사를 없애고 교사가 수시 평가하도록 하는 문제도 학력 저하, 평가의 공정성 훼손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당연히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해야 마땅하다.

 교육정책이 어떤 모습,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교육의 결과가 달라지는 건 자명(自明)한 이치다. 졸속 교육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곽 교육감은 이 점을 유념하고 교육정책 추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