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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트위터 입방정으로 날아간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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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뉴캐슬 수비수 호세 엔리케(왼쪽)가 지난 27일 맨체스터 시티 전에서 뛰는 모습. [중앙포토]

100여 글자의 짧은 메시지가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스포츠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크리스마스 이후 10여 일간 네 경기를 치르는 박싱데이 매치가 한창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이하 뉴캐슬)의 알란 파듀 감독은 29일(한국시간) 토트넘과 원정경기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주전 수비수 호세 엔리케의 부상 탓이었다. 파듀 감독은 전력 노출을 막기 위해 엔리케의 부상을 숨겼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상대는 이미 부상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적에 기밀을 알린 ‘스파이’는 당사자 엔리케였다. 트위터가 화근이었다. 그는 경기 시작 4시간 전 트위터에 “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에 검사를 해보니 경기에 결장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경기이고 꼭 뛰고 싶지만 햄스트링(허벅지 근육)이 너무 뻣뻣하네요”라고 자신의 상태를 올렸다. 토트넘은 엔리케가 빠진 자리를 집중 공격했다. 0-0이던 후반 12분 에런 레넌이 결실을 맛봤다. 엔리케 대신 왼쪽 수비수로 출전한 제임스 퍼치를 따돌리고 균형을 깼다. 실점한 뒤 크룰 골키퍼가 소리를 지르며 수비진의 집중을 요구했지만 뉴캐슬은 후반 35분 추가골까지 내주며 0-2로 완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파듀 감독은 정보가 새나간 데 대해 유감을 드러내며 “이와 같은 일을 막을 구단 내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엔리케가 주말 웨스트햄전 출전이 가능한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그의 트위터를 체크해야 알 수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때문에 구단이나 선수들 자신이 곤란해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런 벤트(선덜랜드)는 자신의 이적을 막은 토트넘 구단주를 트위터에서 강하게 비판했다가 문제가 되자 사과하고 계정을 폐쇄하는 홍역을 치렀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직전 네덜란드 대표팀의 엘례로 엘리아(함부르크SV)는 모로코인을 조롱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려 물의를 빚었다. 그러자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네덜란드 선수단에 트위터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앞서 잉글랜드와 스페인도 집중력 저하를 이유로 대회기간 선수들의 트위터 사용을 막았다.

 내년 1월, 5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조광래 팀에도 ‘폭풍 트윗(적극적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것)’을 하는 선수가 여럿 있다. 기성용·차두리(셀틱)·유병수(인천) 등이 대표적이다.

기성용은 스코틀랜드에서의 일상 모습을 온라인 생중계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팔로어 수는 2만 명이 넘는다. K-리그 득점왕 유병수도 꾸준히 팬과 교감하고 있다. 29일에는 “여기 날씨 엄청 좋아요.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참 좋은 날씨예요”라며 요즘 전지훈련지인 중동의 날씨와 근황 등을 전했다.

이에 대해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트위터를 통해 팀 내부 정보가 외부로 새나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문제의 소지가 될 경우 대회 기간 중 선수들의 트위터 사용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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